요즘 대학입시설명회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그만큼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대학마다 전형요소와 전형방법이 서로 다른 탓 때문에 합격 가능한 대학을 정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 가지 틀림없는 점은, 우리나라 대다수 학부모와 수험생은 가능하다면 서울대학교를 최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싶은 심정에 있다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에 따른 전공학과의 선택에 앞서서, 적성이나 소질을 불문하고 일단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명문 고등학교의 기준은 간단하다. 서울대학교에 몇 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는가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 실로 우리나라의 정관계와 경제계 등 주요 지배집단에는 서울대 출신자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서울대와의 인연을 자랑삼지 않을 이가 별로 없다는 점을 부인하기란 힘들다.
이달 초에, 이러한 서울대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과거 일부 사람들이 학벌사회의 원흉으로 서울대학교를 지목하여 ‘서울대 폐지론’을 전개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이 서울대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지난 8일 국회에서 무더기로 상정된 법안들 속에 슬그머니 끼어 넣어 일명 ‘4대강 살리기’ 예산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만 것이다.
법안의 취지는 서울대학교를 법인화하여 세계 명문대학으로 육성 발전시키자는 것인데, 그 내용이나 방법을 살펴보면 그 길만이 최선책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에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총장 선출을 현재의 직선제에서 이사회 선임방식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데, 이는 직선제의 폐해를 강조하면서 과거 임명제의 폐단을 상기하지 않은 처사라고 본다. 앞으로 서울대 총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대선후보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국민들의 눈에 거슬리는 처신을 하고 다니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정부가 지난 9월 28일에 발표한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은 서울대 법인화뿐만 아니라 거점 국립대학의 법인화 추진, 학장직선제 폐지, 성과급 연봉제 도입, 학과평가 및 경영정보공시제 도입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정책의 득과 실에 대한 충분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를 확연히 드러낸 셈이다.
국립대학 법인화를 우리보다 먼저 시행한 일본의 경험에서 밝혀졌듯이, 대학이 스스로 운영재원 확보를 위해 사기업처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교수들로 하여금 연구보다는 수익사업에 관심을 갖게 하는 역효과를 빚고 있다. 기업의 경우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수요가 없는 제품을 생산중단하고 직무재조정을 통해서 인원감축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수 있으나, 특히 국립대학의 경우는 기초학문 육성보호의 사명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경영방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한 일이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한 공론 형성을 외면한 채 법인화만을 고집하는 당국자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간과하고서 거수기 역할을 하고만 여당 의원들은 서울대학교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아무튼 대학선진화 사업의 주요 내용이 지닌 한계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조차 이를 대학선진화 자체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비유컨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마치 4대강 죽이기를 원하는 식으로 몰아가는 양상과 다름 아니다.
법치국가라는 것은 법을 입안하여 제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이 공정할 뿐만 아니라 정당할 경우에 성립한다고 본다. 날치기 법을 앞세워 공권력으로 소통을 가로막는 일에 열중하는 통치방식은 법치(法治)가 아니라 합법성을 상실한 법 집행의 수치, 곧 법치(法恥)일 뿐이다.
그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노력하는 일은 너무 개인적인 욕심만 챙기는 짓이다. 입학하고 싶은 서울대학교가 진정 어떤 대학이라야 개인한테도 좋은 일이 되고 나라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새삼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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