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1960, 70년대에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국민 모두 열심히 일한 덕분에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97년도 말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정도 회복세로 들어섰다고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완전한 경제 회복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우려의 목소리, 아직도 IMF 한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를 두고 볼 때 2,30년 전 보다는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전화, 냉장고를 갖추고 있는 집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집집마다 그 정도는 다 갖고 있고, 자가용도 몇 집에 한 대 정도로 보급되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부작용은 돈이 우상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면서 돈맛을 알게 되었고, IMF를 겪으면서 돈의 위력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돈을 벌려고 하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안가리고 달려든다. 이런 세태를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도 급증하고, 손해를 보는 사람도 속출한다. 지난 해 중반에 높은 이자율을 보장한다는 감언 이설에 속아서 신용불량 금융 기관에 돈을 맡겼다가 손해 본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사회는 점덤 더 돈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해서 돈 앞에는 부모, 친척, 친구, 인륜과 도덕도 소용없는 세상으로 급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돈만 아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남의 탓, 세태 탓을 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자신부터 변화되어서 「일용할 양식」과 「적당한 옷」,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집 한 채」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배워 익히는 사람은 드물다. 분명 이런 절제와 감사의 삶은 탐욕과 물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신을 들볶고 사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써 탐욕과 물욕을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경제 제일주의」를 넘어서 「경제 숭배」로 치닫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일 것이다.
이런 빛과 소금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어마 전에 어떤 일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파트 앞길에서 일곱 살 꼬마가 오토바이에 치었다. 동네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는 청년이 배달 중에 사고를 낸 것이다. 꼬마는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합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금쪽 같은 내 아이를 다치게 한 소행이 밉고 괘씸해서라도 내심 「어디 한 번 고생 좀 해봐라」하는 생각이 들텐데, 꼬마의 부모는 달랐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인 그들은 「그래도 우리가 그 사람들 사는 형편보다 나은데 우리가 손해보자」고 했다. 고 했다. 사과의 표시로 받은 얼마 안되는 돈은 입원비를 하기에도 모자랐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심각하니까 나중까지 생각해서 제대로 보상받아야 한다면서 남들이 오히려 성화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 돈 받아 부자 될 것도 아니고, 우리 집 애를 생각해서라도 그 사람을 봉으로 만들어 무슨 덕을 보겠느냐」고 대꾸를 했다. 남편은 아예 한 술 더 떠서 꼬마가 퇴원하면 어려운 그 중국 음식점의 매상이나 올려주자는 얘기를 꺼내 주변 사람들이 허허 웃고 말았다.
「이런 일은 어쩌다 한 번 잇는 것이겠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 도처에 숨어 있다고 확신한다.
창세기에 보면 야훼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창세 18,32)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인성(人性)은 황폐헤지고 패륜과 부조리가 판을 치는 사회, 소돔과 고모라 버금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멸망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의인 열 명이 어딘가 있기 때문이 아닐가? 세상이 죄악에 찌들은 것 같지만 그래도 유지되는 것은 도처에 숨어서 우직할 정도로충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쫓는 유명 인사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세상 한 구석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이들이 이 세상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고 하겠다.
이제 곧 시작되는 사순절, 세상과 사람을 탓하기에 앞서 희망을 갖고 자신부터 달라지도록 노력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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