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는 제가 생겨난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를 주신 천주께로 돌아갈지니라』(전도서 12장 7~8절)
경기도 남양주군 영복산에 있는 세종로본당 공원묘지 입구를 막 들어서면 낮으막한 언덕에 서 있는 검은색 비석에 이런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준주성범(遵主聖範)을 삶의 이정표로 삼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다 가셨던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님이 우리 인간의 생명은 영원 앞에 초라하다며 선종하기 전 가족묘지 비석에 이렇게 새겨 놓았다.
조금 더 걷다보면 후미진 모퉁이 길 옆에 유신초기 공안사범이라는 명목으로 전격 사형당한 7명이 협소한 공간에 나란히 누워있다. 당시는 시신조차 거둘 수 없는 처지여서 인권에 관심 있는 몇몇 신부님들이 서둘러 안치하였는데 비석 한 개만이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다.
묘비명이 그리고 있는 대로 모든 것 다 버리고 땅에 묻히면 아무 차이도 없는 육신들이 아니었던가
돌아가신 교우들의 시신을 염하는 형제자매님들이나 공원묘지를 관리하는 형제님들의 모습이 항상 고맙게 느껴지곤 한다. 존경하는 분 중에 아무 대가도 없이 봉사의 마음으로 염을 하시는 구형제님, 조형제님이 계신다. 누구보다도 큰복 받을만한 일을 하는 그분들을 만날때마다 손을 꼬옥 잡곤한다. 주검을 다루는 그분들로부터 참인간의 조건을 배우고 싶어서.
이미 위선으로 얼룩져버린 육체, 지금부터라도 정성스럽게 잘 추스리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가꾸어 나간다면 돌아온 탕자처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은 될 지 지난 삶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어떤 내용의 알찬 묘비명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며 오늘도 걸어보는 영복산의 샛길은 완연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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