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3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했다. 뿐만 아니라 김대통령은 교황 성하가 침묵의 교회 북한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북녘 땅에 신앙의 자유를 회복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교황은 이에 대해 방북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답변했다. 물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북한을 방문해 그 땅에 입을 맞추는 일은 아직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염원해오던 중국 방문조차도 실현되지 않은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중국과 비교해서도 훨씬 더 폐쇄적이고 견고하게 닫혀 있는 북한 땅을 성하가 밟을 수 있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 분명하다.
역대 어느 교황보다 왕성하게 전세계를 누비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의 사도로서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갈들과 분열, 분쟁의 상처를 싸매주는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왔다. 가톨릭 뿐만 아니라 국경과 인종, 종교의 벽을 넘어서 인류의 영적 아버지로서 평화와 화해를 향한 교황의 호소는 분쟁과 반목의 당사자들을 화해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교황의 중국 방문은 지금까지의 오랜 교섭과 접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장애들이 가로놓여 있다. 대만과의 단교문제가 그렇고 더 근본적으로는 교황의 중국 가톨릭 교회에 대한 일체의 사목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 당국의 완고한 입장이 그러하다. 하지만 많은 외교 전문자들은 오래지 않아 중국과 교황청이 공식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그럼으로써 지구상 몇 안 남은 공산국가 중 하나인 중국에 신앙의 자유가 좀더 폭넓게 확보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디인가. 북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이 이번 방문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제안한 방북은 설사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이나 후년, 또는 그보다 더 후에, 아니면 더 세월이 흘러 다음 세대의 교황에게도 유효한 제안이요 요청으로 남을 수 있다.
새 천년에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평양에서 거행되고 남북의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미사에 참례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민족 전체가 누리는 축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앞서 다시 한 번 우리 민족 최대의 과제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탈북자들,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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