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속담에 『그것은 수뜸부기냐, 암뜸부기냐의 싸움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철이 되면 부질없는 일을 가지고 쓸데없이 다투는 것을 빗대어 꼬집는 말이다.
이 속담의 참뜻을 알면 지금 우리의 정치판이 바로 암수뜸부기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암수뜸부기의 싸움
어느 농부가 성 발렌타인 제일에 뜸부기 한 마리를 잡아다가 맛있게 먹었다. 배가 부르자 갑자기 그 뜸부기가 수컷있느냐 암컷이었느냐의 문제로 부부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남편은 수컷이라고 했고 아내는 암컷이라고 우겼다. 이미 뱃속에 듷어간지 오래인 뜸부기를 놓고 암수를 가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성 발렌타인 제일이 돌아오면 해마다 부부는 싸움을 계속했다. 『작년에 우리가 먹었던 그 뜸부기 말야. 분명히 수컷이었는데…』『무슨 소리예요. 암컷이라고 말했는데도 당신은 아직도 그걸 수컷이라고 우기세요』
부부싸움은 이렇게 해마다 계속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들 부부는 늙어 죽는 날까지 매년 한번씩 이런 싸움을 계속했을 것이다. 누가 이들 부부를 어리석다고 탓하랴.
지금 이땅에도 수뜸부기냐, 암뜸부기냐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4·13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불씨가 되살아 나고 있는 것이다.
호남, 영남, 충청지역에서는 이미 『그래도 DJ, 그래도 YS, 그래도 JP』라는 구시대적 구혹가 각 당 선전홍보단에 의해 유포돼 유권자들을 다시한번 3김씨의 볼모로 삼으려는 구태가 자행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역감정 원조공방이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얼마 전 영호남 지역감정의 책임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발언은 김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은 5·16직후 시작했다고 언급한데 대한 반박형태로 보인다.
지역감정의 태동시기는 김대통령이 대통령선거에 나온 1971년부터라는 것이다. 지역감정이 언제부터 누구 때문에 생겼느냐에 대한 DJ와 JP의 발언을 어느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지역감정 자체를 부채질하는 일일 뿐이다.
복합적인 원인이 장기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런 문제를 나라와 정파의 지도자라 할 두 사람이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단순히 「어느 때부터」「누구 때문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관행
뜸부기를 잡아먹고 배가 부르자 갑자기 그 뜸부기가 수컷이었느냐 암컷이었느냐의 문제로 싸움을 벌이는 그 부부와 무엇이 다른가?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있었던 지역감정 단골메뉴로 또다시 선거를 치르겠다는 속셈은 정말로 시대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찧을 수 없다는 속담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흔히 우리 민족을 외국에 소개할 때 「문화적 동질성과 동일언어를 갖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워왔지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지역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관중들의 경기장 폭력도 자기 연고지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고 돌리기에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개각 등 정부차원의 주요인사도 그렇다. 인사조치가 있을 때마다 『특정지역 출신 인물을 집중등용했다』, 『어느 지역은 아예 소외시켰다』는 불만의 소리가 어김없이 터져나왔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도 정책결정자들은 사람을 선정할 때 능력이나 업무의 효율성보다는 「지역안배」라는 명목으로 특정지역 출신을 배려하고 있다.
지연, 학연이라는 연줄의 끈이 지역감정의 고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 합법적 기준이 대부분 무시당한 채 연고에 따라 사회적 역할과 능력이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소집단 이기주의가 비온 뒤 죽순처럼 돋아날 뿐이다.
정치인들 마음 속에 「누가 뭐래도 표를 얻는 데는 지역감정이 최고」라는 낡은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한 선거혁명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도 모두들 지역감정의 수례부분은 감추고 피해부분만 강조하고 있다.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아는 사람들이 또다시 그같은 지역감정 발언들을 서슴치 않고 있으니 대관절 어쩌자는 것인가! 이제는 과거처럼 그들의 속셈에 놀아나지 않는 길 밖에 또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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