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또 오고 귀여운 아이들의 입학철이 또 다가왔다. 봄은 해마다 오는 것이고 아이들도 나이 차면 학교에 가는 것이건만 이 봄 입학철에는 남달리 특별한 감회가 솟아오른다.
내가 새옷 입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처음 섰던 날을 더듬어 꼽아보니 꼭 60년전의 일이었다. 그날은 아버지와 큰 삼촌과 함께였는데 나의 담임 선생님은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허리를 구루비시고 내 이름을 유심히 읽어주셨던 것하며 일본식 넉자이름이 적힌 하얀 이름표가 유난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내일 모레면 내 첫 손주가 학교 가는 날이란다. 책가방을 산다. 바지를 산다 하고 마치 잔칫날을 앞둔 것 같은 들뜬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으로 눈시울이 뜨거웠다.
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내 바로 아래 동생이 학교 가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 그 또래 아이들이 동구 앞에 모여 시끌덤벙하였다. 그 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어머니가 치마끝으로 굵은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을.
내 아래 동생은 세돌 때쯤 마루에서 뛰놀다가 굴러 부엌바닥으로 떨어진 일이 생겼다. 한달 가량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그날 이후로 통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청각기능이 망가졌다는 것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귀먹은 동생이 학교 갈 나이가 되고 그 날이 입학식날이었던 것이다. 그 날 우리집 안마당에 홀로 선 어머니의 외로운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내 사랑하는 첫 손주가 학교 가는 이 기쁜 날을 앞에 하고 가신 지 스무해 되는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메인다. 아름다운 세월도 가고, 슬픈 세월도 갔다. 가는 세월이 더욱 아름답게만 보이는 것이다. 내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어울리지 않게 옛날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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