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지금까지 수많은 겨울을 맛고 보냈건만 올 겨울처럼 겨울의 깊은 맛을 느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꽤 여러 해 전에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엔 거의 해마다 입춘날 거위들이 짝짓기를 하더라고 쓰여 있었다. 겨우내 노래하지 않던 산새들이 그날부터 노래를 부르며 열심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는 말씀도 곁들이셨다.
올해 입춘은 바로 설 전날이었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봄이 그렇게 자리잡고 들어서면 야생의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타는데, 정작 인간은 아무 것도 못 느끼고 있으니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영특함도 별 것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꽁꽁 언 땅 속에선 식물들이 봄을 피우기 위해 꼼지락거리고, 동물들도 알맞은 계절에 새끼를 낳기 위해 절기를 보아가며 짝짓기를 하는데 자연에 생채기를 내어가며 문명을 일구고 있는 인간은 봄을 맞기 위해 무엇 하나 준비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자연이 애써 준비한 봄 잔치를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누리기만 하는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다.
맨 처음 사람인 아담이 흙으로 빚어졌으니 사람의 몸은 자연의 흐름에 따르게끔 되어있다. 그런데 현대 과학문명이 제공한 계절과의 무관한 삶 덕분에 우리는 자연의 횡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란 엄격해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이렇게 문명의 혜택을 누릴 때, 우리의 풍요로운 삶 뒤편에 우리가 지나치게 소비한 에너지로 인해 절대빈곤에 환경재난까지 겹쳐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이 있진 않을지?
하느님은 봄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느라 여념이 없으시고 한낱 미물은 식물과 동물들도 그 곁에서 열심히 그분을 돕고 있건만, 우린 계절감각조차 잊고 살아온지 이미 오래다.
문득 재의 수요이이면 언제나 듣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고층 아파트 문화는 인간을 땅의 기운에서 멀리 하고 기계에 의존적이게 한다. 전체의 흐름을 놓치고 부분만 보는 인간, 그래서 입동이나 입춘의 의미를 몸으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우리의 감각이 새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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