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회와 보속의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용서의 청원을 거행했다. 새 천년을 여는 대희년의 사순기기를 맞아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역사 안에서 교회 구성원들이 범한 과오들에 대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함으로써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는 중대한 선언을 한 것이다.
교황의 용서 청원은 가히 새 천년 교회의 새로운 역사의 막을 올리는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일부에서는 교황의 참회가 기대에 미흡하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황이 이미 「제삼천년기」를 통해 명백히 밝혔듯이, 교회의 모든 자녀들, 인간이기에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하느님 앞에 용서를 청하지 않고는 결코 새 천년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없다는 점에서 하느님과 형제 인류들 앞에 겸허하게 잘못을 고백하는 「내 탓이요(mea dulpa)」의 몸짓은 과연 교회다운 모습이라 하겠다.
교황의 참회는 단지 한 종교집단의 수장이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이 범한 과거의 잘못을 뉘우쳣다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화해, 원래 하느님과 맺었던 축복된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이며 형제인 인류와 화해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교황의 용서 청원이 단지 교황의 몫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교황의 참회는 그가 지닌 엄청난 도덕적 힘과 영향력으로 인해 다른 지역교회, 나아가 다른 종교집단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각 지역교회가 자기 관할 지역에서 이뤄진 역사적인 사건들을 성찰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점이 있었다면 이에 대해 참회하고 죄를 고백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각 지역교회 안의 각 교구, 각 본당, 그리고 내가 속한 단체와 가정에서도 그같은 고백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몇해 전에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서는 「내 탓이요」운동을 펼쳐 큰 호응을 받은 적도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많은 형제들이 모인 가운데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고도 한다.
오늘 우리는 항상 남만을 탓하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도 내 책임은 없고 지역감정에 휩싸여 자기 고향 사람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돼야 하며 같은 가톨릭 신자가 높은 자리에 있어야 내가 득을 얻는다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본당사목이 잘못되면 사제나 수도자를 탓하고 혹은 평신도들이 못나서 그렇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내 탓이요」를 고백할 때이다. 교황 성하의 고백을 듣고만 있지 말고 저마다 자기 가슴을 치며 내 죄를 고백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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