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12일 온두라스의 한 인디언 오지마을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의 처형식이 조촐하게 치러졌다. 콜럼부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지 506년만에 이뤄진 인디언들의 역사적 단죄였다.
이날 행해진 모의 재판은 충격적이었다. 콜럼부스에게는 원주민 학살을 비롯해 납치·절도·강간·침략·노예무역·민족말살·고문 등 침략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모든 죄가 적용됐다.
그리고 유죄평결이 났다. 인디언 사수들은 15세기 당시 복장의 콜럼부스 전신초상에 9발의 화살을 쏘았다. 로마 교황청은 여기에 화답하듯 교황 알렉산더 6세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을 옹호한 점을 사과했다. 일종의 역사 바로세우기가 아니었을까.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학설로 제시한 「지구는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1633년 종교재판을 받았다. 지동설은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천동설에 정면 배치되는 이단이었다.
그는 『다시는 이단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교회에서 파문당했다. 재판정을 나오며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갈릴레이의 복권은 파문된지 359년만인 1993년에야 이루어졌다.
교회, 역사적 과오 반성
로마 교황청이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인류에게 저지른 교회의 과오에 대해 고백했다.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문건이 그것이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2일 바티칸 미사에서 그 잘못을 정식으로 고해했다.
이는 교회가 견지해온 무오류성의 교리를 뒤엎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오류와 범죄를 반성하고 고백하는 진실에 대한 용기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예수 탄생 2000년을 경축하는 대희년에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3000년을 향해 나가겟다는 새 시대의 희망이 거기에는 감겨져 있지 않은가.
고백에는 유럽에서의 마녀사냥과 가혹한 형벌, 16세기 멕시코 원주민을 150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줄어들게 한 신대륙의 학살 방조, 그리고 유태인 박해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 침묵한 점 등 종교적 양심을 자극해온 여러 통점들이 망라돼 있다. 숙연한 감동을 자아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바티칸은 참회와 화해를 통한 「인류 대화합」실현에 나선 것이다. 새로운 천년대가 열리는 대희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겠다는 계획은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지난 95년 한국천주교회가 「사목」지 특집 기사를 통해 식민지지배를 묵인하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허용한 역사적 과오를 뉘우치고 거듭나기를 천명한 것은 그래도 다행스런 일로 여겨진다. 개신교 신자들도 97년 일제 때의 신사참배와 유신정권 지지, 5·6공 정권에 대한 협조 등을 회개하는 참회록을 발표했다.
잘못에 대한 용기있는 고백과 참회는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성찰과 그에 바탕을 둔 실천이 사회 구석수석을 밝혀주기 바란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탐욕을 정화시켜주고, 그들의 반목과 모략에 실망한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권도 진정한 참회해야
그러나 우리의 지도자들, 정치지도자들은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한 고백과 참회는 커녕 여전히 거짓과 위선, 시대착오와 역사적 범죄를 거듭하고 있다.
이땅에 군사독재의 씨를 뿌리고 개인의 권력욕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민주주의가 인권의 신장에 큰 해악을 끼치고 정치를 만악의 근원으로 만든 이가 누구인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다는 거짓 명분을 내세우며 수 십년 동안 이전투구의 냉전을 반복하고도 잘못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참회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4·13총선을 앞두고 정치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형태는 참회와 진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기를 기대하는 국민을 철저히 배신하고 있다.
가톨릭의 회개운동이 선거철을 맞아 「네탓」만 하며 이전투구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 각성제가 되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치도자들이 교황청의 과오 고백을 접하며 역사인식을 제대로 하고 진실성 회복의 첫걸음으로 진정한 참회부터 하기를 간곡히 바라는 것은 한결같은 국민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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