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술로 변화시켜 그것을 손님들에게 가져다주어 잔치를 흥겹게 하셨다. 물항아리를 가득 챙워 그곳에 온 손님을 즐겁게 했던 그 기적, 그 기적의 항아리는 이 새 천년을 시작하며 조금씩 새고 있다.
『주님, 그 기적의 항아리가 너무 오래 되어 금이 갔습니다』
『주님, 항아리에 금이 가서 술이 새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천년을 마감하며 잔칫집에 초대되었던 마리아처럼 애타게 예수님을 찾아가 무언가 대책을 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랬더니 주님은 『아예 항아리를 깨어버려라』하고 말씀하신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먹금어 골동품 중에 골동품이요, 기적을 담은 항아리라 진귀품 중에 진귀품인데 아예 깨버리라는 야속한 말씀을 하셨다.
울타리를 치고, 구역을 가르고, 넓은 팔로 감싸 보호했던 그 우리를 부수고 이제 세상에 나오라는 것이다. 태초에 빛과 어둠, 물과 뭍, 사람과 짐승, 삼라만상으로 이 지구를 한덩어리로 꾸몄던 창조주께서 새천년을 시작하며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지니면서도 다시 한번 경계를 부수고 한덩어리가 되라는 창조의 명령을 내리신다. 또다시 마음껏 살아보라는 생명의 명령을 내리신다.
세상은 부패하고, 세상은 죄스럽고 세상은 불경스러워 하느님의 것을 방주 속에 고이 넣어 보호해야 한다고 믿어왔던 지난 천년이 막을 내렸다. 우리는 비가 그치고 물이 빠져나간 지금 이 시점에서 노아처럼 방주를 빠져나와 하느님과 새계약을 맺고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 모두가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기는 바로 새천년의 시작이 되며 대희년이 되는 것이다.
금이 가서 새는 항아리를 떼우려 하지 말고 아예 부수고 그 기적의 물을 땅으로 돌려 보내어 우리를, 전우주를 둘러싼 땅을 흥겹게 하자는 것이다. 땅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모두 넘나들기에 그 기적의 술은 모두 땅으로 돌려보내 온인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수천, 수만배의 기쁨을 누려보자.
새로운 경영에서는 경쟁의 논리보다는 동반자의 논리를 중시하고, 이윤을 위한 장사보다는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중시하는 경영논리를 펴고 있다. 몇몇 사회학자들은 그런 행위가 「가치」,「관계」마저 상품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참혹스러운 병폐라고 하지만 그것은 쓰기 나름일 것이다. 물을 술로도 바꿀 수 있는 기적의 힘으로 탄생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부여가 가능한 논리들이라고 본다.
세상의 논리가 서로간의 벽을 허물어 동반자가 되는 것, 어떤 것을 하든지 가치로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이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거야말로 잘된 일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자본주의 논리에 세례의 물을 부어 하느님의 진정한 논리로 변화시킨다면 가나의 혼인잔치가 재현될 것이다. 온 세상의 복음을 선포해야 할 우리들의 사명 곁에 세상의 논리가 터를 닦오 잇으니 우리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선교를 세속의 논리가 함께 해주는 셈이 된다.
세상과 어떻게 분리해내고 聖別봉헌할까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더 호가실한 선교는 세상의 논리들을 보다 철저하게 활용하면서 세상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라는 것을 모든 것에 적용시켜 지나치게 세상과 하느님을 분리시켜왔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느님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삼라만상이 모두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여러분이 하느님을 모른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듯이 사실 삼라만상은 모두 하느님의 법칙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려는 것은 세상에서 독야청청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청정하게 생존해가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는 세상을 외면하고 우리만 구원되어보려는 야무진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역할분담을 주장하며 홀로 서서 하느님을 섬기려는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세사의 논리들은 서로 담을 헐고 하나가 되어 관계를 맺어가며 생존하려는 데 우리는 여전히 역할분담을 하며 제몫만을 담당하려는 경향은 여전히 지니고 있다.
본당사목이나 신자 교육이나 교구의 행정이나 각기 자신이 처리할 몫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새천년은 갈라졋던 것들이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서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열에서 교회도 제외될 수는 없다. 그것은 새천년에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새로운 창조의 명령이고 새로운 생존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이웃, 교회와 세상을 하느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열린 선교이고, 이것이 하느님과 세상을 연결시키는 「관계의 사목」으로 변신되는 시작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