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생명적 축산정책의 종식을 기원하는 범종교인 긴급토론회가 지난 17일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있었다.
주최 측은 긴급토론회를 여는 배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지난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한 뒤 지금까지 200만 마리에 육박하는 소와 돼지들이 살처분 되었으나 아직도 확산 추세여서 얼마나 살처분 될지 모른다. 약품마저 부족해 돼지의 경우 생매장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끔찍한 반생명적 처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애도하고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5개 종교(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의 종교인들이 모여, 영문도 모른 채 생매장당하고 있는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현재 상황을 불러온 축산 정책과 식생활 문제를 짚어보는 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한다.”
주최하는 5개 종교 중 가톨릭 단체가 가장 많았는데 굳이 열거하고 싶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천주교 우리농촌살리기 운동본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한국천주교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위원회, 가톨릭환경연대, 천구교 정의구현 전국연합(천주교 인권위원회,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가톨릭청년연대).
토론회에 앞서 생매장당한 200만 생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5대 종교 고유의 의식이 진행되었고, ‘애도의 노래’를 부르는 순서에 내가 초대되었다.
혹한의 한파를 뚫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 숙연하게 진행되는 다른 종교의 의식들이 그날따라 매우 낯설게 여겨졌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에 사람이 아닌 짐승을 애도하는 특별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에 대해 이질감보다 존중감을 지녀왔고, 하는 일 때문에 다른 종교의식을 비교적 자주 체험했던 내게 그랬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말도 안 되는 축산정책의 희생양이 된 짐승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무고한 짐승들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구나. 조화롭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서로 받아들이는 것이로구나. 고맙고도 고맙다.’
내가 한 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숨져가는 흰 물새를 다시 노래하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에밀리 디킨신의 시로 김정식이 만든 노래 ‘내가 할 수 있다면’ 전문)
노래를 부르면서 이웃들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했다.
충남 당진군 신평면에서 돼지를 키우는 ‘돼지엄마’는 천여 마리를 살처분 당한 채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겪으며 ‘방콕(방에만 콕 들어박혀 있음)’하고 있다고 했다.
보상이 있다고 하지만 어떤 기준에 맞추어 언제 해줄지 기약이 없고, 6개월 동안은 사육을 재개할 수 없으며, 현재까지 20% 이상을 살처분해 버렸기에 사육이 재개되어도 한동안 새끼 사올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 짓눌려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전라도 나주시 다도면 신동리에서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는 친구는 조류인플루엔자 위협으로 밤잠을 못자고 있다. 주의단계에서 ‘반경 500m 이내’였던 살처분 기준이 심각단계에 이르러 ‘반경 3Km 이내까지’로 되었기에 목을 조여 오는 심정이라고 했다.
죽어가는 생명을 다시 살릴 방법이 내게는 없고 고통 받는 이웃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없지만, 함께 아파하고 함께 애도함으로써 상생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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