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인권변호사로 헌신하다 지난 1월 11일 선종한 이돈명(토마스 모어) 변호사는 한국사회의 1970~80년대 민주화 역사의 현장에 언제나 함께했다. 이 변호사는 1972년 유신 선포와 더불어 사반세기를 넘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살아왔다. 그의 삶은 우리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반공법 위반 사건을 시작으로 청계피복노조사건, 인혁당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등 그의 손을 거쳐 갔던 사건의 면면이 고난 받은 민중과 함께한 고뇌어린 삶 그 자체였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창립 멤버로 활동한 팔순의 노(老) 변호사는 죽는 날까지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병인 신부전증에다 전립선암으로 투병중이면서도 여전히 인권 옹호에 앞장서느라 하루하루가 짧았다. 명성과 권위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한 삶이었다. 후배들이 이 변호사를 부르는 애칭인 ‘돈명이 할아버지’는 학생과 노동자, 민주인사들에게 시골 느티나무처럼 편안한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돈명 변호사는 김수환 추기경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김 추기경과 이 변호사는 동갑내기에다 생전 터놓지 못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30년 넘게 뜻을 함께한 동료이자 신앙의 동반자로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법관이 되고 1970년대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돈명 변호사. 그에게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열망과 하느님의 충실한 자녀로 사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한 참 신앙인이었다. 쉽고 편안한 길 대신 고난의 길을 택한 그였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 변호사는 생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든을 넘긴 지금 나는 또 다른 의미의 하느님과 만나고 있는데 주님과의 첫 만남이 정의를 향한 길이었다면 지금은 어린 종의 마음으로 내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그분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며 “지금껏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오는 여정에 수많은 이들이 턱없이 모자라는 내 그릇을 채워주고 감내하기 힘든 십자가를 함께 져주었기에 이처럼 활동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제 생애 마지막까지 하느님 구원사업에 동참하길 바랐던 이 변호사의 모범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억울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의 삶이 후대에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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