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음력 정월 초하루, 설이 코 밑입니다. 친인척들과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함께 윷놀이, 연날리기를 하며 함박웃음으로 새해를 맞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갈 수 있는 고향이 있고, 한 손에 들 수 있는 선물꾸러미를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고 행복한 설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몸과 마음이 시린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될 것을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이 시려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북한이탈주민, 고향을 떠나 낯선 먼 이국의 땅인 한국으로 시집 온 다문화 가족의 엄마?아내, 가족들의 생계와 보다나은 삶을 꿈꾸며 이 땅으로 온 외국인 노동자,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독거노인, 노숙인, 조손가족, 한 부모 가정, 고아?미망인?수형인?병자, 그리고 가난과 장애로 소외된 이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외롭고 추운 설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소중함과 존귀함을 잃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하느님께나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겠습니까?
구약성경은 당신의 백성에게 가난한 이와 힘없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구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증언해줍니다. 가난과 곤경과 고통은 인간의 불행으로 간주되었고, 율법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를 지켜주도록 하고 있습니다.(탈출 22,20~26)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자비로 보호하시고 당신 백성의 탄원을 들으시어 고통과 비참의 상태에서 구출해내심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비로운 행동의 실천을 요구하십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씀과 행동의 실천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증언해줍니다. 특별히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백성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된 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방문하고 치유해 주심으로써 그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아버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의 내적일치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내적일치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마태 22,33~40)의 의무에로 초대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 행위가 이웃(특히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사랑으로 표출되어야 하며 이것이 종국적으로는 종말론적 구원의 결정적 요인이 됨을 가르치십니다.(마태 25,31~46)
초대교회 공동체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성령의 인도로 말씀의 선포와 성사의 거행과 사랑의 실천을 기본으로 살아갑니다.(사도 2,42~47) 점차 공동체가 커져가면서 교회 공동체는 조직적인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사랑의 실천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봉사자들을 임명하게 되고, 무의탁 과부들을 정규적으로 돌보았으며, 모금을 통해 가난한 교회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등의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의 실천은 교회 공동체를 넘어 이교인들에게까지 확장되어감에 따라 그리스도교 공동체만의 결정적인 특징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마저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사랑의 실천을 두고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감명을 받은 유일한 측면은 교회의 사랑 실천이다.”
교회의 사랑실천인 카리타스(Caritas)는 이후 교회와 세계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에 따라 약화되기도 하고 강화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교회 안에서 존재해 왔습니다. 1897년 독일 프라이부르그에서 독일 카리타스가 설립된 이후, 1950년 9월 15일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자선, 구호, 사회복지, 개발 사업을 총괄?조정’할 목적으로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Cor Unum) 회원 기구이며 UN협의 기구로써의 지위를 가진 국제 카리타스가 설립됨으로써 카리타스는 명실상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사랑실천기구로 거듭나게 됩니다. 현재 165개국 카리타스 회원 기구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전 세계 201개의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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