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소의 이름은 ‘한강이’와 ‘순풍이’였다. 한강이는 서울의 한 본당과의 인연으로 이름을 딴 소이고, 순풍이는 뱃속에 송아지를 품고 1월에 출산할 계획이었던 소다.
한강이와 순풍이는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다른 6마리의 소들과 함께 축사 주변 땅에 묻혔다. ‘자식 같은 소’를 잃은 농민은 눈물을 뚝뚝 흘리지도, 목 놓아 울지도 않았다. 다만 촉촉한 눈물을 눈가에 맺을 뿐이었다.
빈 축사에 높다랗게 쌓여있는 짚단과 ‘구제역’ 팻말이 꽂힌 무덤은 아이러니하다. 농민의 땀으로 거둬놓은 소 먹이를 먹을 이가 없다. ‘소 주인’이라고 불리는 농민과 빈 축사의 풍경도 아이러니하다. 농민의 발걸음 소리를 멀리서부터 알아듣고 ‘음메’ 울어주는 이가 없다.
농민은 구제역이 할퀸 상처 가운데서도 새 살이 돋을 수 있는 것은 도농 관계를 맺은 서울 본당 신자들의 ‘전화 한 통’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냐는 말만 되뇌는 이,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이, 도울 수 있는 일을 묻는 이.
‘소’가 없는 자리를 ‘사람’이 채운다. 창조질서보전에 역행하는 무분별한 살처분에 대한 논의와 농민들에 대한 보상 대책 마련은 두 번째 이야기다.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픈 이들에게 다가가 관심을 보일 때, 그들은 비로소 살고자 하는 ‘희망’을 본다.
꼭 가톨릭 교리와 구제역 간 교집합을 찾지 않더라도, 사회교리의 공동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울고 있는 그들에게 마음을 보태주는 것이 지금 우리가 농민과 소와 돼지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손수건인 것이다.
구제역이 소강상태를 보일 때 보도를 하는 것이 부끄럽다. 편집 일정이라는 핑계의 소산을 이야기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나 또한 농민들의 눈물에 좀 더 일찍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사죄의 마음으로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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