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이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세례받은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 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로마 6,6). 이런 새로운 탄생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세례성사 때 마귀와 죄를 끊어버리겠다는 서약을 한다.
즉 세례 집전자가 예비 신자들에게 마귀와 그의 모든 행실과 유혹을 끊어 버리겠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끊어 버립니다』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 서약은 매해 부활 성야미사 중에 세례 갱신식을 통해서 재확인된다. 이렇게 해마다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 이유는 삶의 현장 곳곳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지속적으로 대항하며 싸우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데에 있다.
현재의 사회 상황을 볼 때 세례 서약을 좀 더 명확하게 고백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제16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3 총선을 앞두고 혼탁하다 못해 막가는 선거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타락 선거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들 삶에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에 타락 선거를 유발하는 요인은 죄와 악의 세력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런 세력들에 대해 말과 행동으로 『쓶어 버립니다』는 신앙 고백을 해야만 한다.
타락 선거의 요인으로 우선 지역감정을 꼽을 수 있다. 입후보자의 됨됨이와 능력을 살펴보지도 않고 특정 정당을 특정 지역에서 무조건 밀어 주거나 배척한다면, 지역 이기주의는 계속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국민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예수님 역시 지방색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에서 자라나셨는데, 그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갈릴래아는 천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예수를 소개하는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시큰둥하게 응답한다. 또 대제관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천한 지역인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올 수 없다고 단정한다(요한 7,52).
유다인들은 지역 편견 때문에 구세주를 못 알아보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던 것처럼 우리 역시 지역 감정에 매인다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타락 선거의 또 다른 요인은 표를 얻으려고 금품과 항응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법률이 정하는 공식 선거 자금이 1억200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에는 30억을 쓰면 당선되고 20억을 쓰면 낙선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런 부정 금권 선거의 원인은 돈으로 유권자를 매수하려는 후보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표를 담보로 후보자에게 돈을 갈취하려는 선거 브로커들, 행락비와 식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일부 유권자들에게도 그 원인이 있다. 후보자가 30억이라는 막재한 돈을 들여서 당선이 된다면, 임기 내에 그 돈을 뽑으려고 기회가 되는 대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를 것이 뻔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 안을 것이다. 당장에 몇 만원이 공짜로 들어왔다고 좋아하지만, 그 돈은 결국 나와 내 가족, 내 후손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결과를 낳는다.
에사우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상속권을 팔아 넘기고 고통을 당하는 어리석음을 범했고(창세 25,29-34), 유다는 은전 삽신냥에 스승을 팔아 넘겼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마태 27,3-5). 선거판에서 부당하게 건네고 받는 돈은 에사우의 팥죽 한 그릇, 유다의 은전 삽십 냥 처럼 재앙을 불러오는 돈이다.
이제 우리 신자들은 지역 감정과 금권 선거라는 악의 세력에 대항해서 『끊어 버립니다』라는 세례 때의 서약을 새롭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단 한번에 선거 풍토가 개선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무리라고 하겠다. 잘못된 선거 풍토는 몇 십년 동안 지속된 것이고, 그것을 바꾸려면 아마도 그것이 지속된 만큼의 세월, 아니 그 이상이 걸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대에 안 되면 다음 대에, 다음 대에 안되면 그 다음 대에까지 계속 노력해서 반드시 고쳐 놓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요구된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런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되었다(로마 4,13-25).
신앙인은 아브라함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노력의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담하고 포기하는 것은 참된 신앙과는 배치되는 태도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망과 낙담의 유혹에 대해서도 결연히 『끊어 버립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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