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체벌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체벌금지를 하달한 반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간접체벌 허용 방침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체벌을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할지 아니면 체벌을 절대 금지해야 할지 혼란스런 모습이다. 체벌에 대한 웃어른들의 논란이 가중됨에 따라서, 원활한 수업 진행에 대한 교사들의 불안감은 커가고 있다. 편 가르기 식의 논의구도에서 학부모 대다수 또한 어느 것이 자녀를 위해 올바른 일인지 판단이 쉽지 않은 셈이다.
하다못해 이런 발상도 해본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고 시장원리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보는 식인데, 개별 학교 스스로 ‘체벌허용 학교’인지 아니면 ‘체벌불허 학교’인지 공시하게 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체벌허용 학교인 경우, 그 안에서도 학급에 따라서 체벌의 수위와 방법을 다양하게 정해두고 각자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 역시 자신의 교육방식에서 체벌이 차지하는 중요도 및 방식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바탕 하여 학생으로 하여금 수업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체벌허용 학교에서 수학교사 ‘갑’은 간접체벌을 하는 선생님, 수학교사 ‘을’은 체벌을 하되 단체 체벌을 하는 선생님, 수학교사 ‘병’은 개별 학생 실력향상을 위해 기꺼이 해당 학생에 대한 체벌을 활용하는 선생님 등으로 나누어지고, 학생과 학부모는 원하는 수학 선생님의 수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진정한 수준별 학습이라기보다는 우스꽝스런 맞춤형 학습 형태이다.
교실붕괴라는 말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고 지금 우리 교육현장에서 목격 가능한 현실이다. 가정환경이나 성장과정에서 타인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제한된 신세대 아이들 가운데, 특히 마음껏 뛰놀 공간이나 친밀히 교감할 자연생활을 멀리한 도회지 아파트 세대 아이들 가운데, 행동장애를 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수업 중에 이곳저곳 기웃대며 돌아다니고 심지어 다른 친구 공부를 훼방하는 짓을 할 뿐만 아니라, 아예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아이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행동장애나 학습장애를 지닌 학생에 대하여 담임교사 및 수업교사한테 지도책임을 도맡기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본다. 해당 학부모, 정신과 전문의사, 상담치료사, 경우에 따라서는 성직자와 경찰까지 포함한 ‘네트워크형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다. 비유컨대, 옛날 전통마을에서처럼 청소년 일탈행위자에 대하여 네 자식 내 자식 가리지 않고 어르신들이 관심 갖고 응대하는 사회화 원리가 현대사회에서 발양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러한 보완적인 제도적 장치를 생략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체벌 없는 교실을 만들려는 조치는 성급함이 없지 않은 성싶다.
체벌의 무용론이든 불가피론이든 그 나름대로 타당한 논거와 경험적인 사례를 내세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체벌 문제는 단순히 옳고 그르고의 판단보다는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큰 맥락에서 접근해야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쟁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 시대에서 교육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진정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성찰이 더 급하다.
고(故) 이태석 신부님께서 톤즈 아이들을 위해서 지어야 할 건물로 교회가 먼저일까, 학교가 먼저일까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은 학교였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공동체로서의 학교 상(像)은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이자, 아이들에겐 행복한 삶의 무대여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의 강한 교육열과 높은 교육수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무한 경쟁으로서의 교육열과 교육수준만 강조하면 체벌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목표달성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단기간에 보장하는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서도 귀한 자식이고 나라를 위해서도 창의적인 인재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먹고사는 생존보다는 품격 있는 생활을 지향하는 시대에서 그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아이들에게 체벌금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인 것이다.
체벌에 대한 논란으로 편 가르기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은 어떤 것인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할 일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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