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를 다녀오니 사람들마다 무엇이 가장 감명 깊었는지 묻습니다. 바르셀로나-몬세랏-아빌라-파티마(포르투갈)-세비야-톨레도 등, 스페인 중부에서 시작하여 포르투갈을 거쳐 다시 스페인 남부를 잇는 10곳 이상의 도시를 이동하면서 세계적인 성당과 건축물들을 순례하다 보니, 나중에는 가이드의 설명을 메모해 둔 수첩을 보지 않고는 사진을 보아도 순례지의 특징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 가운데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 몇 가지를 만난 순서대로 꼽는다면, 아빌라 주교좌성당에서 만난 대 데레사 성녀의 모습, 파티마의 신축 성당 중앙 제단에 걸려 있는 예수님 고상, 톨레도 주교좌성당에서 본 엘 그레코(El Greco)의 성화 <베드로의 눈물>입니다. 이 세 가지를 꼽은 이유는 예수님과 그 제자인 베드로 사도 그리고 데레사 성녀의 ‘시선’ 때문입니다. 파티마 새 성당에 걸린 십자가 고상은 고통스러워하며 고개를 떨군 모습이 아니라, 미소를 머금은 자애로운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얼굴과 노동으로 단련된 듯한 몸은 사는 장소와 피부색을 구분하기 힘든 동양인과 서양인을 합해 놓은 모습이라지요. 파티마의 예수님은 전 세계의 교우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 몸으로 전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리고 데레사 성녀의 모습이나 3번의 배반을 참회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에서도 시선은 누군가를 응시하듯 하늘로 향해져 있었습니다.
동행한 신부님께서는 미사 강론에서, “가톨릭 신자 가운데는 성인들의 삶을 추앙하다 못해 그런 삶을 좇아 살려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살아 낼 수도 없고 그렇게 사는 게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즐겁게 살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기억하자.”는 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번 순례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라면 바로 이런 ‘믿음의 시선’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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