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물빛도 봄빛을 띠고 있다. 낮은 집들이 이마를 맛대고 있는 골못길 담장 밑에 개나리도 봄 한철 화사한 빛깔을 한껏 뽐내고 있다.
하지만 벌써 지는 꽃도 있다. 소담스러운 꽃봉오리에 순백함을 머금은 목련이 덧없이 지고 있다.
선거철 그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도 잠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유세장도 정적에 잠기어 있다. 그 많던 선거운동원, 「아줌마 부대」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라는 시 일절이 어울리는 분위기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분분한 낙화…
결별(訣別)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중략-
나의 청춘을 꽃답게 죽는다』
권불십년이요, 화무는 십일홍이라 했던가. 16대 총선의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 지금, 무엇이 아쉬워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직도 패배를 실감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정객들이 서성이고 있다. 관객들이 떠난 극장의 무대에 혼자 남아 외마디 비명같은 넋두리를 토해내고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아름답다고 했는데 그들의 모습이 측은하기만 하다.
아름답게 떠나는 법
왜 떠날 줄을 모르는가! 왜 아름답게 떠나는 법을 모르는가?
『젊어서부터 세속적인 기질이 없었고 본성은 산을 좋아했다/ 잘못해 속세의 그물에 빠진 지 어느덧 13년/ 묶인 새가 옛 숲을 그리워하고/ 지당(池塘)의 물고기가 연못을 잊지 못하득/ …오랫동안 새장에 갇혔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다』
5세기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일부다.
쌀 다섯 말을 얻기 위해 구구하게 향리(鄕吏)에게 허리를 굽히는 것은 차마 못하겠다며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하면서 지은 시다.
이처럼 벼슬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선비들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았다.
노자(老子)도 공을 이루고 이름을 얻으면 그 직책에서 물러나 한가히 몸을 가지는 것이 하늘의 길이라 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재선 실패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주요 분쟁지역의 특사로서 「해결사」노릇을 해냈다.
그리고 집없는 이들을 위한 집짓기 등 빈민구제와 인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의 진가는 퇴임 이후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주도한 소련 공산당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한때 세계적인 스타였다.
그러나 1991년 실각한 그는 96년 대통령선거에서 참패한 뒤 돈벌이를 위해 국제행사에 참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나이 70인 그가 얼마 전 나라를 위해 정계에 복귀할 뜻을 밝혔다. 지지율이 1%도 안되는 고르바초프의 정치재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머물기를 원할 때 떠나겠다
같은 시기 존 메이저 전 영국총리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은퇴 사유는 가족을 위해서다.
그는 『가야할 때는 넘기기보다 머물기를 원할 때 떠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앞서 무라야마 노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이토 시게루 사민당 부총재도 정계를 떠났다. 세계지도층의 「아름다운 퇴장」을 왜 우리는 흉내조차 못내고 있는 것일까.
지난 수십년 동안 부정부패와 이전투구를 일삼으며 지역감정을 부추겨 국민을 분열시키는데 앞장서고, 또다시 패배를 맛보고서도 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정치인들은 언제쯤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