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처럼 견고하게 버티어 오던 분단의 벽은 과연 허물어지는가? 만약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되어 김대중 대통령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면, 우리 모두 분단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역사적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에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에 의해 무너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소떼를 실은 트럭에 의해 열어 보이기도 했던 분단의 장벽이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다시금 굳게 닫혀 버렸던 엄중한 분단 장벽의 문. 그 견고하고 준엄했던 분단 장벽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을 기대해 본다. 물론 아직도 설익은 기대는 금물이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정상회담 성사를 그간의 햇볕정책의 결실이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자랑하였다. 반면에 야당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발표한 저의를 의심하며 이를 「총성없는 북풍」으로까지 몰아갔다. 어쩌면 결정적인 장애물이 우리사회 내부에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 「준비된 대통령」의 「준비되지 않은 남북정상회담」으로 막 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는 변화」를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변화」에 대한 신뢰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 외교적 성과 홍보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다. 상대를 용서하고 포용하며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넉넉히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정 참회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과오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 겸허한 자세, 그것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그 결실을 거두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만 하낟.
교회는기도로써 그 원동력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 소련 개혁 개방의 물꼬를 텄던 고르바쵸프의 용기와 실천력을 닮고, 김대중 대통령이 동서독 통일을 이끌어낸 콜 총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한다. 남과 북의 통치권자가 함께 만나 새 천년 새 역사를 열어 나갈 수 있는 힘이 7000만 민족 전체의 가슴에 용솟음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뒷받침이 없으면 정치적 만남은 한순간 볼거리 쇼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다가올 평화공존시태에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본격적인 통일사목 준비에도 임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한교회의 위상 정립을 위해 바티칸과 수교가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미 북한은 80년대 말에 바티칸과 수교를 추진한 바 있다. 바티칸과의 수교가 이루어지면 교황의 방북도 실현될 수 있으며, 남북한 교회 사이의 교류 협력을 본격화하게 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인적 물적 토대 구축이다.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새롭게 양성해야 한다. 금번 추계 주교회의에서 각 교구별로 담당키로 한 북한지역 교회를 위해 일하게 될 인재를 시급히 양성하고, 이미 사목 일선에 서 있는 사목자들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평신도 지도자 양성을 서둘러야 한다. 인천 교구 시노드에서는 통일사목을 위해 전문적으로 일할 평신도 종신부제 양성방안이 제안되었다. 북한 교회의 현실을 놓고 볼 때 공소회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될 평신도 지도자의 양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적 토대 구축을 위해서는 통일기금의 조성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1994년에 서울대교구가 통일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이후 여러 교구에서 통일 기금을 조성해 왔다. 그러나 통일 기금은 통일 후를 대비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통일 기금은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 필요한 투자 재원이 되어야 한다. 이 재원을 이용하여 통일사목을 준비하는 인적 물적 토대를 형성하고, 통일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통일사목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대희년의 참 뜻을 구현하는 새 천년의 새벽을 힘차게 열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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