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나는 잠깐 낮잠 자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다. 연일 창밖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하는 학생들의 확성기 소리 때문이다. 이런 수라장도 대학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한번은 참다못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학생에게 다가가 『자네는 지금 자네가 질러대는 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말을 걸어본 적도 있다. 바로 도서관 옆에서 부리는 이런 작태에 대해 어느 누구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교육은 인내인가? 아니면 포기인가?
노고 언덕에서 바라다보이던 와우산과 한강은 이제 흉측하기 짝이 없는 고층 아파트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외국에서 십년만에 돌아와 제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이 시각적 소음(visual noise)이지만 그것은 눈을 감고 보지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음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내 귀는 스스로 닫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 식당에서, 버스나 전차 안에서, 심지어는 도서관이나 공연장, 성당에서조차 끊임없이 천박하게 울여대는 휴대폰 소리는 그야말로 이 세상이 귀머거리 졸개 마귀들로 점령당했다는 징조이다. 그렇다고 더 큰 소음으로 그 졸개들을 쫓아버릴 수는 없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공멸(共滅)을 원하는 마귀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C.S. 루이스에 따르면 지옥에서 침묵과 음악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지옥같은」소음이 경청하는 침묵(listening silence)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잠을 망친 나는 개나리가 한창인 노고 언덕으로 올라간다. 진달래가 몇그루 없기 때문에 진달래의 분홍빛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섭섭하다. 언젠가 두이 화음을 맞춰 멋진 이중창을 부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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