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면서 자연 질서의 경이로움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그렇게 추워 모든 것이 얼어붙어 생명조차 숨을 죽이더니 어느덧 생명의 기지개가 느껴지니 말입니다. 지난 한파에는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세계적으로는 폭설과 한파, 홍수 등의 기상 이변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재산피해와 이재민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국내에도 폭설로 강원도 일부가 재해지역으로 선포되고 엘니뇨현상으로 제트기류가 약화되 상층의 차가운 공기를 밀어낼 힘이 약해져 차가운 공기를 시베리아까지 밀고 올라가지 못하고 한반도에 쏟아냄으로써 한반도에 한파가 불어 닥쳐 힘겨운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노숙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구제역으로 인해 가족과 같은 가축들을 거의 매몰하게 되는 가슴 아픈 일까지…. 제 개인적으로는 신묘년을 맞아 예쁘다며 토끼 암수 한 쌍을 사서 기르고자 했는데 그만 돌볼 줄을 몰라 한파에 떠나보내야 했고, 두 번의 실패 끝에 네 마리의 토끼에게 용서를 구하며 ‘저승에서는 따뜻한 날씨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렴.’ 하는 기도와 함께 땅에 묻고는 토끼를 키우는 일을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희망과 용기를 나눌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밖에는, 그분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밖에는, 그분에게는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발밖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통하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발로 뛰어다니시며 선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성체성사의 신비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종말론적 구원을 희망하며 지금 여기서 카리타스로 살아갑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중략)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31~46 참조)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카리타스의 기본 정신에 대하여 그분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오늘날 개종 권유라고 하는 어떤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접어두고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나 전인격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결코 교회의 신앙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느님에 대한 가장 훌륭한 증언임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여야 할 때와 침묵하며 사랑만을 보여 주어야 할 때를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1요한 4,8) 것을 알고, 우리가 오로지 사랑을 실천하는 바로 그때에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고, 성령으로 가득 찬 뜨거운 마음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카리타스는 살아갑니다. 불교와 힌두교를 합쳐 92%가 넘는 스리랑카가 쓰나미로 죽음과 고통 속에 신음할 때, 이들 곁에 함께했던 각국 카리타스를 초청해 그곳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한 촌로가 다가 와 제 두 손을 잡고 합장하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불교신자로 살아온 저이지만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카리타스에 계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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