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순례라고 해도 편안한 호텔 숙박에 지정된 버스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여행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중남부를 관통하는 순례길을 따라가느라 하루도 같은 곳에서 묵지 않다보니, 실제 내용은 상당히 강행군입니다. 장기 여행을 위한 옷이며 한국식 전투식량까지 잔뜩 담긴 커다란 캐리어를 날마다 버스에 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게다가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각지에서 사들인 물건들로 가방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음을 보고는, 물질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가벼운 짐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습니다.
작은 공동체와 동행한 체험도 저희 가족에게 색다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여행 초기, 고등학생인 작은 딸은 장시간의 비행과 버스 이동 때문에 멀미로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많은 분들이 염려하며 약을 챙겨주시는 바람에 약국을 차려도 될 정도였습니다. 또 식사 때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의 사소하지만 민감해 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서로 배려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아마 일반 패키지여행이었다면 기대하기 힘든 배려였겠지요. 이런 서로에 대한 작은 친절 덕분에 모든 이가 밝고 건강한 표정으로 순례 일정을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순례일정 마지막 저녁, 저희 가족은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다음 여행에서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도 등등. 그리고는 신부님과 한국/현지 가이드, 운전기사께 드릴 감사 편지를 쓰고, 저희 가족을 초대한 스페인 사람들을 위해 현지 가이드를 통해 작은 금액이나마 기부금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딸들에게도 이번 순례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례를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까지 저희팀 모두를 지켜 주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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