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날 아침
내리는 빗속을 걸어서 육사 시비 앞에 당도했다.
어느 선배 시인의 말처럼
편하게 살라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정직하게 살라하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 위에서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살라고만 가르칠 것인가
어느덧 속옷마저 후줄근히 비에 젖는
4.19날 아침 육사 시비 앞에서 말을 잊은 채 나는,
- 김용락「4.19날 육사 시비 앞에서」중
이 땅에 4.19 혁명이 일어난 지 꼭 40년이 되는 2000년 봄 4월 국회의원을 뽑는 16대 총선을 치뤘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던 젊은 사자들의 함성이 진달래 만개한 산야에서 들릴 것만 같은데…. 학생이 중심세력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은 자유당 정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 냈고 『국민이 원하면』물러나야 한다는 역사의 철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80년의 봄, 「국민이 원하지 않는」신군부의 출편으로 이 땅의 봄은 진달래 빛 선혈이 낭자했다.
‘4.19’ 40주년에 맞는 총선
광주 민주화운동도 올해로 꼭 20년. 4.13 총선이 무대에는 4.19 혁명의 주체였던 이른바 「4.19 세대」들이 대부분 퇴진했고, 80년대의 주역이라는 이른바 「386세대」들이 대거 등장했다. 국민 또는 「시민」의 힘이 정치문화의 흐름을 점차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세대교체의 흐름이 정치권의 새판짜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4.19의 진원지였던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에 싹쓸이표를 쏟아부었고, 5.18의 성지 호남에서는 민주당에 몰표를 모아 주었다. 영호남의 편가르기에 동서의 산맥이 등을 돌리는 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바꿔 바꿔』를 외쳤지만 바꾼 것과 못바꾼 것의 한례를 안고 절반쯤의 성공으로 4.13 총선은 아쉽게 막을 내린 것이다.
4.19 혁명 40주년을 보내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는 이 땅의 봄은 지금 어떠한가?
나는 2년 전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님과 모든 주교님들의 집전으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축하미사 자리에 함께했다.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회창 총재를 내 옆에 앉히고 축하미사의 자리에 무릎 꿇고 함께 기도했고,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 주님의 뜻을 받드는 가톨릭 신자로서 두 분은 화해를 다짐하며 『평화를 빕니다』악수로서 많은 이들에게 그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같은 화해의 자리를 주선하는데 한몫했던 나로서는 깊은 감회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화해와 용서는 말처럼 그리 싶지는 않은 듯 하다. 지금 4.13 총선을 치르고 난 후의 정가를 보자. 청와대 측은 곧장 『거국적 협력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여당의 선거대책위원장도 『초당적으로 협력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회창 총재는 화답이하도 하듯 『승패를 떠나 협력해 선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루빨리 민생으로 달려가야 한다』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과연 지금 16대 국회의 개원을 앞두고 정치권은 국민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가고 있는가? 『국민이 원하는』바대로 정치의 내일을 열어갈 생각들을 하고 있느냐 말이다. 여야의 영수들이 모두 가톨릭 신자들인데」.
국민과 함께 밥상을 나누자
미시간대학의 카토나 교수는 「욕망의 경제학」이란 이론에서 『원망이 크면 클수록 욕구불만의 위기도 한결 커진다』고 했다. 지금 정치권의 지나친 욕심으로 우리 사회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선거기간 중 덮혀있던 경제위기의 실체가 또다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노자의 경구 중에 『위험을 피하려면 멈추는 것을 알야아 한다』는 말이 잇듯이 이제 여야가 턱없는 욕심의 고리를 끊고 상극의 싸움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겸허하게 국민의 뜻을 읽어야 할텐데….
선거운동 기갖 중에야 한끼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의혹으로 비쳐지기도 했겠지만, 이제 16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국민가 함께 밥상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아름답고 건강한 정치를 이 생명의 봄엔 펼쳐 보여주겠노라고 4.19 묘역과 5.18 묘역 앞에서 다짐해 보라. 때늦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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