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결과의 평가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국민주도의 정치풍토쇄신작업이 갈피를 잡은 듯 하다.
지난 90일간의 헌신적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노고의 결실로는 다소 미흡한 점들이 보이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 모두의 수준이니 전전적 자세로 수용해야 한다.
기성 정객들의 퇴조와 새로운 정치인들의 진출은 밝은 증거이고 투표율의 저조와 선거사범의 증가는 어두운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16대 총선 결과만들 따로 떼어놓고가 아니라 지난 날들처럼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의 무관심과 방관이 되풀이되었을 때 비롯했을 결과이다. 이러한 기준에서의 상대평가로 보면 4·13 총선의 결과는 분명 개선되고 있다.
이번 총선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IMF 경제위기의 책임을 묻고 그 잘못을 청산한다는 의미였는데 이 점에서는 엇갈리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음으로 우리 정치풍토의 고질인 『거짓의 악순환』과 『천박해진 사회기강』의 청산 의미인데 되풀이되는 지역감정의 그림자가 여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밝고 새로운 증거들이 사막의 샘물처럼 반갑다.
이제 그런대로 첫 단추는 제대로 채워졌다. 국회의원 선출로 우리의 정치적 의무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감시와 격려가 필수적이다. 잘하는 일에는 성원과 격려가, 잘못하는 일에는 질책과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체는 결코 게으른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정치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지하는 정치제도
교회가 특별히 선호하는 정치제도는 없다.
대통령 중심제이건, 내각 중심제이건, 또는 왕정이건 삼권분립과 법치에 기초하고 있다면 정치체제의 외형에는 관계없이 교회는 그 같은 제도를 지지한다. 즉 균형과 견제의 관계가 행정·입법·사법부에 확립되도록 교회는 이를 지원하고 육성한다(「백주년」46항).
균형과 견제에 바탕을 둔 삼권분립의 정치제도가 바로 민주주의 제도이다.
자명한 진리이지만 정치나 경제 등 인간의 현세적 삶은 독점을 바라지만 실현되어서는 안될 금단의 과실이다. 에덴동산에서의 무화과 열매처럼 말이다.
항상 입법과 행정기능은 긴장속에 균형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집권당이 의회의 다수의석을 확보해야만 국정이 안정된다는 논리는 오래전부터 야당이 의회다수당을 차지함으로써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건전한 나라살림을 유지하는 미국민의 현명한 선택의 예를 보아 절대적 명제는 아니다. 오히려 집권여당이 의회소수당이 된다는 사실은 그 선거가 최소한 부정선거는 아니었음을 반증하며 효율과 결과에만 급급하지 않고 시간은 걸리지만 튼튼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히려는 국민의 의지로 환영받아야 한다.
여소야대의 현상이 부당한 대가를 위한 야합이나 처벌의 위협속에 강요된 협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균형과 견제라는 삼권분립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값진 노력의 결과들을 훌륭하게 가꾸려는 국민의 감시와 헌신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부활의 참뜻
지난 3월 13일은 상해 임시정부수립일이기도 하였다.
선열들이 81년전 이국땅에서 임시로 정부를 세웠다는 뜻은 문자 그대로 절망 속에 한가닥 빛을 고르는 작업이었다. 낙관적이고 밝은 상황이 아니라 절망적이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희망과 기쁨을 준비하는 일은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숙명적으로 여겨졌던 『거짓의 악순환』과 『천박한 정치풍토』를 우리 정치현실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성과가 그동안의 시민단체들의 공적이었다. 정의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정치풍토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감시로의 승화가 시민단체들의 노고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다.
오늘 정치적 현실은 부활절을 맞는 교회에게 시사적이다. 생명의 기술적 연장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아니다. 죽음의 극복은 두려움 속의 회피가 아니라 굳은 믿음과 희망 속의 받아들임이다. 오늘의 현실은 파스카의 신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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