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의 첫 부활축제를 지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우리도 주님의 모습과 뜻에 따라 새롭게 태어날 것을 이미 굳게 다짐한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새천년의 벽두에 지나지 않은 경과 속에서 향후 우리가 나아갈 길을 공론화 함은 뜻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근대사회는 개방사회이다. 여기서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이미 우리 교회는 사회개혁에 적극 참여해왔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예산과 결산을 모두 공개하고, 평신도들을 교회관리에 참여시키는 용기를 보임으로써 권위적 모습을 벗어 던지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아직도 서구에 비해 폐쇄적이며 권위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음은 현실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을 방해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근대사회에서도 교회의 위상과 역할이 지대하고 높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스티튜션(institution)의 한 성원으로서 남다른 이상적 가치형성과 전파, 사회질서의 원천적 역할자 임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조화 및 적응하려는 가톨릭 교회의 모습은 이미 오랜 전통과 특성으로서 명문화되었다. 근래인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위정자, 지식인, 예술가, 부녀자, 노동자, 고통받는 이들 및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했다. 여기서 교회는 사회 성원들의 권위와 역할을 인정 및 존중함으로써 「하느님 나라」건설의 적극적 협력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아울러 라틴어가 아닌 조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한 조치는 교회적 권위 탈피와 합리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교회는 신앙에 있어 강제가 아닌 자유의사를 강조함으로써 합리적 입장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같이 변화된 사회환경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는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온 「하느님 나라의 건설과제」가 순풍에 돛단듯 수월해질 수 있음을 공인하는 말이다. 우리의 궁극적 과제가 신비주의적이며, 반주지적 속성을 지닌 채 자기 도취적 열정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세계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러시아의 레닌과 미국의 빌 게이츠를 뽑았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공히 남다른 사회구원 의지를 높이 산 것이며, 그 방법에 있어서도 사회적 욕구에 대한 올바른 간파, 그리고 이에 기초한 과학적이며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아 준 공로의 결과이다. 우리가 맞고 있는 작금의 상황도 그들이 맞았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적 풍요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근대사회에서 교회의 비중과 역할이 축소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은 독선적인 공산주의자들 뿐이다. 지나친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 생활로 인해 야기된 무질서의 혼란속에 종교의 필연성과 그 가치는 근세에 더욱 고결한 진가를 공인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편의적 속성과 가식의 범람 속에서 교회는 외면 당하기 일쑤이며, 형식주의의만연이 낳은 부실이 위기상황을 실감시키기도 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보다 적극적이며 과감한 처방전 마련과 함께, 이에 대한 현실적 대처능력을 강구할 때인 것이다.
교회는 최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는 진리와 정의의 원천이며, 화해와 평화의 근원이다. 따라서 이를 신념화하고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양식을 먹고 성찬의 전례에 참여하는 끝없는 수련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사회의 구원 의지와 교회의 상징은 일치적이며, 근대사회에서 절대적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사회와 잘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근대사회는 대중교육의 결과로 조성된 작품이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대중은 과거의 대중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의 시급한 과제는 교육받는 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갖추는 일이다.
새천년기의 특성을 문화 및 지적우위의 사회로 예견하고 있다. 저렴한 상품의 대량생산이 결과한 물적 풍요가 문화의 중요성을 대두시킨 것이다. 문화가 지닌 본질은 유용성의 견지에서 사회성원에 의해 얻은 노력의 결과들이지만, 그 핵심은 사회질서에 필연적인 가치와 규범들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사명과 역할의 비중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근대사회의 권위는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역할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다.
진정한 권위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문화창조의 주체 및 역군으로서의 역할과 진실된 내면생활 육성 및 적극적인 교회체질 개선을 통한 사회성을 갖추는 일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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