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이 눈물을 보였다. 3월 18일 사제서품 금경축을 앞두고 본지와 특별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였다. 외아들 처지였음에도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한,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미안함으로 가득한 ‘어머니’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외아들은 신학교 입학이 허락되지 않던 상황. 정 추기경의 어머니는 사제가 되고자 하는 아들의 뜻을 좇아 그때 서울대교구장 이었던 노기남 대주교를 찾아가 떼를 쓰다시피 신학교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정 추기경의 어느 글에서처럼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는 온갖 쓰라림을 견디어내는 것을 마다 않는 한국 어머니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때, 하루를 걱정해야 할 만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식구라고는 달랑 아들과 두 식구뿐이었던 어머니 입장에서 그것도 외아들이, 신학교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인간적으로 반갑게 들리지는 않았을 터다.
그럼에도 신앙으로 아들의 사제 성소를 묵묵히 받아들였던 어머니라고 했다. 추기경은 어머니 모습에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그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는 말을 들려줬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을 다니고 복사단 활동을 하던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그냥 모든 것을 하느님이 돌봐주신다’는 자연스런 믿음을 갖게 됐다던 정 추기경의 회고를 참고하더라도 그러한 어머니의 신앙적 영향은 사제의 삶을 이어준 소중한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몇 년전 같은 날 형과 동생이 사제품 받게 된 사연을 취재한 적이 있다. 형제라고는 그 둘뿐이었는데 형이 신학교 입학을 동생보다 늦게 하면서 서품 동기가 된 사례였다. 관심이 갔던 부분은 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매일 저녁기도를 놓치지 않는 어머니 모습에서 두 형제는 기도를 배웠고 그러한 어머니 기도 속에 신앙을 배우고 성장하면서 장래 희망은 자연스레 사제가 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부모가 최초의 모범 대상이라는 사실 그리고 가정이 성소의 못자리라는 것을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언젠가 미사 중 들었던 강론 내용이 기억난다. ‘자녀들이 다 크고 난 뒤 본인 의사를 물어보고 세례 받도록 할 작정이다’고 얘기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러면 왜 어린 아이 때 예방 접종은 물어보고 하지 무조건 찌르고 보느냐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신앙 교육으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어야 할 부모 역할에 대한 ‘강조’였다고 본다. 그만큼 현대의 가정이 신앙 생활의 배움터는 고사하고 어느 세미나에서 제시된 것처럼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습득하는 정도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여겨진다.
개신교계 설문이지만 최근 조사된 부모들의 양육 관련 조사를 참고할 때 ‘성공적인 자녀 교육에 신앙적인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자녀들이 잘 자라 주는 것은 희망하면서, 그 첫손에 꼽아야할 신앙 교육은 외면하는 모습인 것이다. 가톨릭 신자 가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 추기경을 눈물짓게 한 어머니의 신앙은 결국 구체적으로는 자녀들을 봉헌 생활의 삶으로 이끄는, 넓게는 올바른 신앙인의 삶을 지내도록 인도해 주는 가정의 몫 부모의 자리를 대변한다는 생각에 계속 마음 안에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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