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하이데거가 남긴 말이다.
서구를 닮기위해 숨가쁘게 헐떡이며 달려온 근대화의 정점에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탈근대를 외치는 서양 지성인의 경종의 소리를 듣는다.
인간적인 자율과 인간적인 것의 극대화를 위해 신을 쫓아내고 시작된 근대화 내지 세속화의 추세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인 것의 말살에로 향하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뒤늦게나마 인간은 거기에서 안전과 구원의 보장을 얻기는 힘들겠다는 것을 때닫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희망해야 하는가?
서양 형이상학 및 과학의 역사는 철저하게 존재자 중심이었다.
다시 말해 「있는 것(존재자)」만을 강조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무(無, 없음)」를 존재 「있음」에서 배제시켜 「없는 것」으로 쫓아버려온 「무」 제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서양 형이상학에서는 「무(無) 중심 또는 공(空) 허(虛)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의 종교는 로고스적 종교, 즉 계시적 『하느님이 직접 말하는』종교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말을 중시하지 않았으므로 진리란 말로 표현되면 이미 참된 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道可道 非常道). 이렇듯 우리는 언어로 잡을 수 있는 것, 말해진 것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서양의 많은 지성인들이 21세기가 새로운 영성, 새로운 종교성, 새로운 정신성의 시대가 될 것이며 되어야 한다고 힘주엄 ㅏㄹ한다.
이제까지는「있는 것(존재자)」과 이성(理性)으로 관계맺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없는 것(무, 공, 허)」과는 어떻게 관계맺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영성」으로써이다.
이미 서양에서도 오래 전에 신비주의자들은 그러한 영성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영성가인 다석 류영모 선생에 의하면 영성은 우리말로 「얼」이다.
우리 자신이「얼(얼나)」이기에 우리는 「얼(한얼, 성령)」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석 선생은 하느님이 거룩한 이유에 대해서도 하느님은 사물과 인간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있는」것이 아니라 「없이 계심」의 방식으로 있기에 「거룩하다」고 이야기한다.
동양과 한국에서는 누앞의 자명한 있음 보다도 오히려 이러한 불명확한 「없이 있음」을 더 중시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늘(天)로 표현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거룩함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함과의 관계맺음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21세기 영성의 시대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이 땅의 지성인들이 해야 할 과제는 한국적인 영성을 찾는 일이다.
1970년대 「세속 도시」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하비 콕스는 「21세기 영성」이라는 주제로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제목은 「영성·음악·여성」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여전히 철저하게 로고스 중심이다. 반면 칼 라너라는 독일의 세계적 신학자는 서양은 너무나 말로써, 즉 로고스로써만 하느님과 관계 맺으려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양인 내지는 한국인에게 배울 것이 많은데, 그것은 바로 침묵 또는 명상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이라고 하였다.
이제 서양에서도 동양적인 영성, 「없이계심」에 대한 관계맺음의 중요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이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은 「있음」이 아니라 「없음」이다. 없음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차원을 「성스러움」의 들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 중심의 사고가 근대에 들어와서 몰아낸 것은 신이었다. 신 없이 근대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 근대화는 이제 인간을 인간성의 말살에로 몰아가고 있다. 그 위험을 막기 위해 하이데거는 떠나버린, 아니 쫓아버린 신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떠나버린 신을 다시 모셔오기 위해서는 우선 성스러움의 영역을 닦아놓아야 한다. 그러한 성스러움의 영역에 예비하는 일이 새천년 새시대를 맞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이다.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횔덜린) 그런데 우리는 오직 얼의 눈으로만 구원의 힘을 알아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