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의 참상을 두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우리가 얼마나 모질게 당했는지 우리 나이 또래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 그 벌을 받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하고 있는 이 분위기에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느냐?’고 펄쩍 뛰는 가족들보다 ‘선 피해자’인 아버지는 오히려 당당했다. 아버지에게는 이 참상이 보복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 보복에 대해 탈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호미를 빌려주지 않았던 친구에게 삽을 빌려주지 않는 건 복수고, ‘전에 내게 호미를 안 빌려줬지만 난 삽을 빌려 주겠네’라면서 빌려주는 건 증오다.”
이것을 일본 지진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입시켜 보면 이렇다.
“그토록 짓밟았으니 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복수고, 우리는 고통을 당했지만 일본은 고통 받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증오가 되는 셈이다.”
물론 이 가정은 일제의 탄압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만 해당된다. ‘복수는 하더라도 증오는 하지 말라’는 탈무드의 가르침을 무조건 긍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모진 마음을 변호하고 싶어서다.
1930년생이신 아버지는 극에 달했던 일제폭압을 온몸으로 겪었으며,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다시 6?25전쟁을 겪었다. 새마을운동으로 들어선 슈퍼연쇄점 때문에 오일장터 가게를 한 푼 보상 없이 잃었고, 도시의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시멘트 공장 때문에 정든 고향에서 아무런 보상 없이 떠밀려났다. 소년가장으로 열 살부터 행상을 하느라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니 학교 친구는 물론이고 동네 친구들과도 놀아본 기억이 없다. 형제들과 함께 살아남은 것이 성공이었고, 다시 칠 남매를 낳고 노점상을 하면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에만 한 생을 바쳤다. 인간관계가 원만할 까닭이 없고 사회성이 바람직할 수 없으며, 일상적인 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이란 그저 기회만 닿으면 수탈하는 곳이고, 사람들은 틈만 나면 남을 괴롭히고 짓밟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으며,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을 최선으로 알고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세상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압에 더 많이 시달렸던 사람들이 가난한 민초들이었다. 고통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들이거나 상대적으로 덜 겪었던 계층들은 쉽게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있으나, 고통으로 모질어진 마음은 용서와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물리적인 고통은 시간이 가면 잊혀질 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트라우마가 되어 일상을 통해 그것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까지 전이(轉移)된다. 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그것은 매우 명확해지며, 지금 겪고 있는 일본의 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 안에서도 그 트라우마를 배제하기 어렵다. 정말 일본을 하느님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다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지금 일본의 참상을 보고 가슴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이 마음이 사랑이고 용서인가? 아니면 그저 감상(感傷)일 뿐인가?
자신을 죽인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을 용서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던 예수의 말씀을 따라 오늘의 교회는 용서와 사랑을 말한다. 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용서밖에 다른 선택의 길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권고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또 다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쉽게 용서를 말하기보다, 고통으로 인해 모질어진 마음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트라우마로 인하여 용서하고 싶어도 가슴이 열리지 않는 순환적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위한 사회적 배려(교회에서는 사목적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시대적인 분위기에 싸여 잊혀지고 묻혀져가는 그들의 입장과 목소리가 무시되고 짓밟힌다면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만드는 셈이고,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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