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구입하여 사용했던 냉장고, TV가 귀하던 시절 보았던 14인치 흑백텔레비젼, 낡은 소파, 식탁 등등, 친정집의 구석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골동품들이다.
자식들은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것을 보고, 공무원으로서 평생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신 분이라 하찮은 것이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시는구나 생각했다.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친정아버지는 20대 젊은 나이에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한 크나큰 아픔을 간직한 실향민이다. 50년전 직장관계로 서울에 있던 중 6·25사변으로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4월초 남북정상회담 실무 접촉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자 아버지는 구석방에 쌓아둔 골동품을 손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냉장고에 페인트칠을 하고 작동이 되는지 점검하며 쌓였던 먼지를 정성스럽게 털어냈다. 그리고는 자식들 앞에서 엄숙한 선언을 했다.
『이 물건들을 너희는 지저분하다고 버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 통일이 되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너희 큰아버지, 고모, 사촌들을 만나게 되면 모두 전해줄 것이다』라면서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자식들 앞에서 보였다. 우리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절절해져 마음 아팠다.
아버지께서 한편생을 검소하게 살아오신 것도 사실은 생이별한 혈육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호의호식 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며칠 전 평양에서 남북의 두 정상들이 만나 두 손을 굳게 맞잡는 모습은 반세기 동안 굳게 닫혔던 분단의 문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으며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오는 8·15 광복절에는 그리던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려나 보다. 부디 두 남북정상의 합의대로 아버지의 소망인 헤어진 가족들과의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