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갔을 때였다. 박물관과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마닐라 시내에 나갔는데 문득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진하게 덮여있었다. 푹푹찌는 무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서 소낙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엿다. 게다가 매연이 어찌나 심한지 마닐라 시민들도 더러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걸어다니고,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이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띌 정도였다.
마닐라 수도권의 대기오염원은 80~90%가 버스나 지프니에 있다. 지프니는 미군들이 버리고 간 짚차에 드럼통을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대중교통 수단의 하나이다. 그런데 지프니의 엔진이나 자동차 부품 가운데 배부분이 우리나라와 대만의 폐차장 또는 중고차 시장에서 수입한 것들이라고 하니 대기오염이 오죽하겠는가?
금새라도 쏟아질 것 같던 소낙비는 소식이 없고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나중에야 한 사실이지만 하늘을 짙게 드리운 구름층은 먹구름이 아니라 매연덩어리였던 것이다.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은 특히 아이들과 노인들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기에 접어들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매연층은 말끔히 흩어지고 하늘이 싯은 듯 말간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하루빨리 우기가 닥쳐오길 기다리지만, 문제는 마닐라의 매연층이 이웃나라로 이동한다는 데 있다.
마닐라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연을 고스란히 마셔야 하는 근접국가들의 고충 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대중교통 시내버스를 무상으로 지원할 테니 지프니를 없애달라고 필리핀에 요청했다. 그러자 필리핀측에서는 도로가 좁아 대형버스를 운행할 수 없으니 버스를 보내주려면 도로건설도 함께 해달라고 답변했다.
환경재난의 밑바닥에는 이렇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공기는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고, 대기오염의 피해는 불특정다수에게 전달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피해를 막고자 하여 대기오염을 발생시키는 국가에 피해보상에 해당하는 부담금을 물릴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의 공기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된다. 이젠 우리도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비싼 값을 지불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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