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도가 보이는 절부암 앞바다는 요요하도록 파랗고 맑고 써늘하다.
제주 올레12코스가 끝나는 용수포구 옆에는 용수성지가 있다. 배 모양의 기념관과 우뚝한 십자가 탑이 있는 뒤쪽 밭을 가로질러 들어간 곳이 용수성지다. 생각지도 않은 성지를 방문한 행운에 가슴이 설렌다. 아, 이렇게 주님은 또 하나의 선물을 마련해 놓으셨다. 아침배로 가파도에 가려고 서둘러 모슬포로 갔으나 선표가 없어 올레를 걷다가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만났다.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성모님 앞에 고개 숙이고 들어간 작은 성당안은 거룩한 분위기가 감돈다.
2층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작은 유골을 모셨고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신부님이 풍랑으로 제주에 표착한 곳이 여기 용수포구였다. 젊은 신부님은 조선을 끌어안을 큰 가슴을 갖고 고국으로 돌아오셨지만 거부당하고 순교했다. 그 젊은 죽음은 수많은 순교의 꽃으로 자라나 오늘의 한국교회가 되었다. 님의 생애를 떠올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마당으로 나온다.
벌써 햇살이 따갑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은 흔적조차 없다.
바다는 밝은 하늘빛과 진한 남빛, 비취빛, 초록빛 등 뚜렷하게 구분지어 쨍한 빛살 아래 찬란하다. 이 찬란한 빛깔들을 착착 접어서 두고두고 꺼내어 보자며 올레길을 걷는다.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길 중의 하나가 되리라.
수많은 길을 걸었다. 산길과 도시의 길과 들길과 사막길과…. 그리고 이제 차귀도 앞 바닷길을 걷는다. 이미 나는 사라지고 둥둥 팔짝 뛰놀고 싶은 바닷가 길을 따라가는 작은 꼬마는 세상의 많은 것이 소용이 없다. 손에는 묵주 하나만 있다. 성모님과 함께라면 어딘들 아름답고 정답지 않으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넉넉한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바로 최상의 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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