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근접했다. 4년제 대학의 전체 재적생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 가운데 휴학생 수는 60만 명이 넘는 실정이다. 그러니 대학 들어간 4명 가운데 1명은 학교를 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 수준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2배가 되었다.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등록금 부담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의 1/10도 안 되는 데 비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등록금 부담률은 소득 대비 1/3에 해당하여 대학생을 둔 가정의 대다수는 빚을 지지 않고는 교육비 마련이 어려운 형편이다.
‘우골탑’이라는 말이 회자하던 지난 세기의 6,70년대처럼, 어느 정도 빚을 지더라도 대학졸업 후에 취직하면 투자비용 대비 소득효과가 커서 얼마가지 않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전망과 확신이 선다면,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생을 감내할 만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형 직업구조에서는 그러한 기대를 갖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에 지식정보사회의 계층구조 특징상, 대졸 이상의 학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은 35~45% 정도이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은 대학교육이 필요치 않은 일자리에서 고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정은 미국보다도 하층 지식노동자와 주변적 노동자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대졸자의 일자리 수가 부족한 편이다. 사실 최근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55% 내외이고 대학원 진학자 비율은 6% 정도이다. 결국 4년제 대학졸업자의 40% 정도는 마땅한 일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는 실태이다.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생의 90% 이상이 평균 B학점 이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취직하지 못한 탓을 해당 대졸자의 실력 부족으로 돌리기 어려울 성싶다. 일부 언론에서는 대학의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하였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상대평가제도를 통해 학점평가를 관리하고 있고 또한 학생들은 재수강 제도를 활용하여 자신의 학점 향상에 노력을 더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오늘날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부터 취업에 보탬이 된다는 자격증 취득이나 경진대회 출전, 국내외 봉사활동, 외국어 능력제고, 인턴 신청 등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심지어 방학기간에도 쉴 틈이 없이 준비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요즈음 대학생들의 일상 모습이다. 자유와 낭만, 사회정의와 학생운동, 이런 모습은 대학 캠퍼스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물론 캠퍼스 주변은 소비문화의 요람이기에, 밤늦은 시간까지 휘황찬란한 불빛이 젊은 청춘을 손짓해서 부른다. 하지만 고성방가나 고주망태는 개학 초기 잠깐 휘젓고 다닐 뿐, 캠퍼스에 발붙일 곳은 없다. 선배, 후배, 동료 간의 만남 역시 일면적이고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시장에서나 판쳐야 할 ‘경쟁 원리’가 캠퍼스 일상 생활세계의 문화를 지배하고 말았다는 인상을 준다.
이처럼, 비싼 등록금을 물면서 마음껏 기를 펴지 못하고 취업 준비를 위해 애쓴 보람도 없이, 왜 대학 졸업자의 4할 정도는 미취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가? 대학의 해당 전공 단위에서 교수가 자신의 승진을 위해 연구에만 매진하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활동에는 소홀히 해온 점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그리고 대학 당국은 우수한 학생유치와 등록금 인상에 쏟는 정성에 비례하지 못하는 부실한 취업 프로그램 제공의 문제도 없지 않을 줄 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우리 사회가 대학졸업자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일자리의 질과 양을 고려해볼 때 대학생 및 대졸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고등교육의 공급과 수요 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시도했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의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적어도 질적 측면은 아니더라도 양적 측면에서는 ‘대학 세우기’와 ‘대학생 만들기’에서 세계 제 1위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셈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경제빈국을 벗어나서 경제부국의 자리를 잡게 된 것임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 사회는 대학교육이 지나친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에 이른 것 같다. 왜냐하면 자녀의 대학교육을 위한 개별 가계 부담 수준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사회 전체적으로 고비용 저효율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 마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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