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카이사르)의 것은 황제(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 21)
어린 시절, 이 성경 구절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예수님은 어쩌면 그렇게도 말씀을 잘 하실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하는 언변으로 미움깨나 받지 않으실까 은근히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을 접해본 이들이라면 낯설지 않은 이 대목의 주요 등장인물은 바리사이 사람과 헤로데 당원이다. 알려진 대로 이 두 부류는 결코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삶의 제일 큰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헤로데 당원은 유다인의 눈으로 보면 민족의 반역자이자 식민지 지배세력인 로마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야합을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는 로마제국이 한창 성가(聲價)를 높이던 때였다. 로마제국을 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카이사르’라 불린 로마 황제는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러울 게 없는 세속의 최고권력이라고 할만 했다. 당시 로마제국은 제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14∼37년 재위)가 다스리던 때였는데, 당대 가장 많이 유통되던 은화인 데나리온에는‘TI BERIUS CAESAR DIVI AUGU STI FILIUS AUGUSTUS’(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글과 황제의 흉상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최고의 제사장’이라는 글과 황태후 리비아의 모습이 주조돼 있었을 것이다. 화폐를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은 곧 통치자의 힘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카이사르라는 세속의 최고권력을 빗대 말씀하신 것은 단지 당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께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이들의 삶에 드러난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로마 황제와 하느님의 대립을 통하여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거나 이 둘 사이의 변증적 관계를 설명하고 계신 게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과 로마 황제로 상징되는 세속의 권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신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이든 유다 지배세력이든 하느님의 통치와 나란히 놓지 않고 그 자체를 거부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이외의 어떠한 주권이나 그에 대한 충성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실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과거의 잘못된 모든 삶의 모습들과 절연하고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카이사르’로 상징되는 세속의 힘에 쏠리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적지 않은 이들이‘세속’이라는 카이사르와 가까워져 있음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데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세대만 편하고 행복하면 문제없다는 식의 삶의 방식은 예수님이 그토록 싫어하신 바리사이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에게만 해가 미치지 않으면 불의에도 눈감아버리는 태도는 헤로데 당원들의 삶을 빼닮았다. 권력을 누리며 세속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 모순적 상황에도 애써 고개를 돌리는 자세는 사두가이들의 그것과 다름없다.
예수님의 또 다른 명언.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선생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하고 대답하셨다.’(마태 26, 25)
머릿속으로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물음이 떠오른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