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청하는 기도를 할 때마다 쓴 미소를 짓는다. 과연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신다면 어떨까? 나 여기 있다하시면 엎드려 흠숭을 드릴지 아니면 쩔쩔맬지, 도망을 갈지 자신이 없다.
갈릴래아 호수 키부츠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였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높고 별이 반짝이는 밤이었다. 제자들을 기다리신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라는 말이 몇 번씩 튀어 나오고 바람에 비틀어진 나무를 보며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다. 남의 결점이 틀린 글자처럼 눈에 들어오지 말게 해달라고 청하고 싶었다.
컴컴한 정원 너머 호수는 저 아래 검게 출렁대고 나무는 온통 바람에 몸을 흔들고 귓가에는 바람소리로 어수선하였다. 예수님! 하고 호수를 향해 불러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고 반짝이는 토성 사이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났다. 별이 빛나는 밤을 온통 누릴 수 있음에 감사드렸고 멀리 세상을 떠나온 자유로움에 신이 났다. 별밤, 바람 세찬 이국의 밤에, 떠나온 곳을 잊어버리고, 그분이 들었던 파도소리 들으며 온몸 휘청이도록 부는 바람 속을 떠돌고 싶었다.
외딴 길을 따라 호숫가에 서서 검은 물을 바라보며 “예수님! 저 여기 왔어요.”하고 서너 번 소리치고 나자 문득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어쩌나하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세상에, 예수님이 나타날까봐 두려워하다니. 물위를 저벅저벅 걸어오시면 혼비백산할 것 같았다. 뒤돌아서서 총총히 숙소를 향해 달리며 도망가는 내 꼴이 우스웠고 내 믿음의 깊이가 요거구나 하며 혼자 어이없어 했다.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으시고 다른 것을 통하여 함께해주시는 님의 뜻을 그때 알았다. 십자가 앞에 두 손 모아 앉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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