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새벽 0시30분. 우리 일행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행사장인 철원군 월정리 월정리역 광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았을 때는 행사가 이미 시작되어 묵주기도 제2단이 봉헌되고 있었다.
기도는 진지하고 간절했다. 한 단이 끝날 때마다 성가를 바치고, 고통의 신비 5단의 기도 끝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가 봉헌되었다.
『사랑으로 하나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되게 하소서』. 성직자, 수도자, 남녀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는 소리는 거룩하고 장엄하게 조명탑 너머의 어둠 속으로 퍼져나갔고, 그것은 철책선을 넘어 북녘 땅으로도 스며들었다.
새벽 2시. 현장 공연 예술「빛, 소리 월정리」가 월정리 역사, 끊어진 철로, 삭아버린 기차의 잔해, 분단의 둑에서 전개되었다. 이 공연은 50년 전에 고향으로 향하는 경원선 열차표 한 장을 손에 쥐고 끝내 여기서 멈춰서버린 한 노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약 90만명의 생명을 빼앗아 간 전쟁의 비극성을 생생하게 되새겨 주었다.
특히 분당의 둑 위에 설치된 장막을 배경으로 멀티비젼을 이용하여 진행된 「죽음의 행진」은 요즈음 가톨릭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최인호의 소설「영혼의 새벽」에서 읽고 있는 중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새벽 3시 정각부터는 평화의 제단 쌓기. 전국 각지에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배낭 속에 넣어 짊어지고 온 250개의 흙 주머니. 그걸 하나씩 쌓아서 오늘 우리가 하느님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드릴 제사의 제단을 만들었다. 이어서 분단 50년을 참회하며 춘천교구 47개 본당이 고리로 연결하여 50일간 순례한 성광(聖光)이 춘천교구 총대리 신부님에 의해서 제단위에 모셔졌다. 분향 후 대침묵의 성체기도. 그 끝에 봉헌된「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에서는 「한 핏줄 한 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의 잘못을 깨우쳐 주시기』를 기원했다.
새벽 4시 정각. 50년 전 오늘 새벽 이 시간에 전쟁은 시작됐었다. 이 시간을 평화의 시간으로 선포하며, 온누리에 대희년의 기쁨을 선포하는 평화의 종이 50회 타종되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성서의 평화정신을 의미하는 이 종은 분단교구 대표, 교회목자, 백성섬김이, 평화지킴이, 실향동포, 북녘에 뿌리를 둔 수도회, 생일이 6월 25일인 사람, 백성의 길라잡이들의 대표가 나누어서 쳤다.
평화의 종소리가 장엄하게 북녘하늘로 펴져나가는 가운데서 「민족화합의 새날, 새삶을 기원하는 미사」가 시작되었다. 이 대미사의 앞부분 참회의 예절에서는 전쟁과 분단의 잘못,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던 허물, 하느님 자녀답게 살지 못한 잘못들을 주님께서 자비로이 용서해주실 것을 간구했다.
특히 이 미사에서 인상적이엇던 것은 제물 봉헌 때, 빵과 포도주는 물론이지만, 회상, 화합, 일치의 잔치음식으로 전쟁 때 배고픔을 달래던 밀개떡이 봉헌된 것이었다. 이 밀개떡은 휴전선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재배된 밀을 이용하여 철원, 갈말, 김화본당 신자들이 손수 만든 것으로 참가자 6500명이 함께 나누어 먹으며 화해와 일치를 다짐했다. 뿐만 아니라 화해와 희생의 증거로 모자보건법 반대서명서와 북녘동포돕기 헌금이 봉헌되어서 미사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마침예식에서는 북녘땅과 북녘동포들에 대한 강복이 있었고, 남녘 14개 교구와 북녘 3개 시, 9개 도의 결연이 있어서 우리는 더욱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미사 끝에 제단 앞으로 나선 김수환 추기경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였다.
아름다운 밤. 그렇다. 6500명의 사람들, 그 숫자도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지만,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온나라 구석구석에서 먼길을 달려와 밤새워 화해와 일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한 이 밤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