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주교회의는 양국의 역사 공동 인식을 위해 두 차례 회동을 가졌다. 다음은 이 회동을 처음부터 주관해 오고 있는 대구대교구장 이 문희 대주교의 이 모임 배경과 목표 및 성과 등에 관한 특별 기고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마주치는 곳에는 어디서나 늘 한국 사람에게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따라 다닌다는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1945년 이전의 역사를 아는 이가 드물고 그래서 한편은 과거의 사실들을 바탕에 두고 생각하는데 한편에서는 도무지 지난날의 일을 모르고 대화를 하게 되니 감정의 흐름이 막히기 쉽고 일치를 이루기가 힘들다는 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50년 하고도 일 년이 지났습니다. 50년이 지나면 과거의 사실로 객관화된 평가를 받을 수 있기에 비밀스런 문서도 50년이 경과하면 공개하는 것이 보통인지라 한일관계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독립하여 당당하게 국제 사회에서 버젓하게 살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을 한일 양국이 공동 주최한다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양 국민 사이에는 역사가 남겨놓은 많은 감정들이 잔존하고 있으며 그것은 가끔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들을 낳고 대다수 젊은 백성들은 영문도 모르고 딸려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가 아직도 심각하게 남아있는 근본 원인은 독일 같이 전쟁을 청산하는 작업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일본 측에 책임이 있다 할 것이나 그 상대인 우리는 그에 대해서 조금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양국의 청소년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교류는 양국 현황의 이해를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또한 역사의 공동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1965년에 유네스코가 세계의 항구한 평화를 위해서 역사 정리가 필요한 한국과 일본을 위시하여 일본과 미국, 폴란드와 독일, 알제리와 프랑스 등의 나라에 역사 정리를 하도록 종용하였고, 그 때에 한일 역사문제 공동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진척이 없으며 지난 오사까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역사 공동 인식의 필요성이 언급되었고 외상회의는 양국이 공동으로 추진할 것이라 발표한 바 있으나 그 후 제주회담에서는 민간 차원의 추진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아무래도 이웃 나라의 젊은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서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이웃 사랑의 실천을 계명으로 삼고 있는 우리 신자들이 솔선하여 형제애를 나누고 일치를 이루며 또한 우리들의 이 세상 여건들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신자로서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폴란드와 독일은 우리에게 좋은 예를 남겼습니다. 온 세상이 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때인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기 직전인 11월 18일 로마에서 폴란드의 비친스키 추기경과 공의회 중의 35위 주교는 독일 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폴란드 선교 1천 주년을 함께 기념해 주기 바란다고 제의하였습니다. 긴 편지에 폴란드 교회와 국가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독일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지난 악은 용서하고 이제 대화의 시대를 열자고 했습니다. 체스토코바의 야스나고라의 성모님 앞에서 개막될 폴란드 교회 1천년제에 함께 기도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곧 (12월 5일) 독일(동서독) 42위 주교는 답신을 보내며 전적인 솔직함과 성실한 대화로 양민족 사이에 우애의 관계를 조성토록 노력하자는 약속과 함께 1천년제에 참여할 것은 물론 1968년 Meissen에서 열리는 Katholikentag에 폴란드 주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 후 폴란드 주교들은 바르샤바 신문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용서하느냐고 거센 항의를 받았으며 비친스키 추기경과 주교단은 용서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며 당시의 어려움을 헤쳐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수백만의 한일 양국 국민이 상호 방문하는 우리의 형편과는 다른 경색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독일-폴란드는 1972~84년 역사 공동위원회가 열였으며 76년에는 지리 교과서에 관한 권고가 채택되어 정부에 제출했으며 역사문제도 합의에 이르렀다 합니다.
이렇게 교회의 하나됨은 민족과 국가의 담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치의 원동력이 오늘 우리들의 이 세상에도 용솟음쳐야 하고 이렇게 이루는 일치의 모습은 특히 오늘날 극동의 중국과 러시아 국민을 위해서 필요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일 양국 교회는 일치를 위하여 노력할 특별한 사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996년 2월 동경에서 한일 양국 주교들이 회합을 갖고 양국 교회가 복음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양국의 역사에 대한 동일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과 장래의 양 국민의 우애를 위하여 2세들에게 같은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 공동 역사 교재를 편찬할 것을 목적으로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한 데 대해서 양국 주교회의는 각각 승인하고 연락 책임자 주교를 선정하였습니다.
역사 교과서에 대해 노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또 그 편찬을 주교회의가 담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공통의 교재가 새 세대의 역사 공동 인식을 위한 첩경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의 노력이 최종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라는 뜻입니다. 제1차 모임인 동경회합에서 합의한 내용의 주된 골자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을 재촉하도록 하는 의견 교환과 교류 확대에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며 주교들의 솔선수범이 먼저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합의에 입각해서 이번에 두 분 주교님들의 방한이 있었고 회합을 마치신 다음 이 분들은 독립기념관을 견학하시고 귀국하셨습니다.
몇 사람의 노력이 이미 큰 성과를 얻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주교들의 합의에 따라 양국 청소년의 친선을 위한 계획으로 오는 8월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대회에 한일 청소년이 합동으로 루르드 성지를 순례하며 2주 간의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 합의의 과정을 보면 더욱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한국 측의 제안에 처음은 당황한 일본 측도 3차례의 만남을 통하여 완전히 태도가 바뀔 수 있었다는 것입 니다. 한국 사람들이 마음에 품은 상처들을 미처 모르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차차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참으로 형제적인 사랑으로 대하려는 아름다운 과정을 지켜보는 기성세대의 책임자들은 이 일에 힘쓸 이유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애의 번짐이 없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 국민과 국민 사이 특히 과거가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무슨 참다운 연결의 다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는 국익이 우선하고 국민은 나라가 중요하다면 언제나 전쟁도 불사하는 세태가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에는 약하다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음이라 나무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누가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제2차 회합을 마치면서 교형자매들의 이해와 격려와 도움을 청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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