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외방선교회 소속으로 현재 로마에서 활동 중인 배경민(베드로) 신부가 보내 온 글이다.
세계화의 파고는 높고 험난하다. 프랑스 정부는 몇 년간 부채 더미에 쌓인 정부 산하 톰슨 계열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고, 특히 유럽 각지에서 30여 개의 기업과 양도 면담을 했지만, 뚜렷한 결실을 얻지 못하였다.
워낙 적자가 심하여 알랭 주페 총리가 텔레비전에까지 나와서 톰슨 계열은 1프랑의 가치도 없다고 공공연히 확언하였고, 한동안 인수 희망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었다. 여기에 지난 가을 프랑스의 라가르더르 그룹이 톰슨을 인수하겠다고 확정적으로 나타났고, 톰슨 내의 멀티미디어 분야는 한국의 어떤 대기업이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해당 대기업은「톰슨 멀티미디어」의 부채를 감수하고, 프랑스 총리가 공언한 대로 상징적 1프랑을 지불하고 톰슨 멀티미디어를 인수하여, 앞으로 5년간 투자 확대 및 현지인 5천 명 고용 확대 조건을 밝히고,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기업으로 지명되었다.
그런데 톰슨 멀티미디어를 한국 기업이 인수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은 직후, 프랑스의 일부 여론은 톰슨 계열 민영화 정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게 된 것이 대단히 못마땅하고 불쾌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 한국 기업 깎아내리기가 시작되었다. 필자의 한정되고 좁은 식견만으로써 들은 바에 의하면『한국 해당 기업에 톰슨 멀티미디어 양도는 분노를 야기한다』(르 몽드 10월 19일 21면 머릿글),『한국의 해당 기업은 경질 구속된 국방장관의 뇌물수수 사건과 핵심적으로 깊이 관련되었다』(동경 특파원 보도- 르 몽드 10월 29일 19면) 등의 기사를 경제 면에 머리 기사로 보도했다.
이 밖에도 미확인된 출처에 의하면『프랑스는 단 1프랑에 그 자존심을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 팔아 버리는가?』,『한국의 해당 기업은 자체 기술 개발은 하지 않고 모방만 하는 기업』,『프랑스는 전혀 자존심도 없는가?』운운하였다. 이런 중에 11월 중순경 한국의 해당 기업 대표는 프랑스 여론을 의식하여 다시 한 번 한국 기업이 약속한 조건들은 지켜질 것이고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2월 4일 마침내 프랑스의 민영화 위원회는 톰슨 계열의 민영화 계획을 취소한다고 전격적으로 한국에 통보하였다. 이 일을 두고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델라 세라 신문은『프랑스 정부는 톰슨 계열 민영화 계획 취소 결정으로 비난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12월 5일 23면).
미국에서 발행되는 헤럴드 트리분 일간지는 1면 기사에서 이 일을 두고『인종차별주의적 결정 의혹이 있다』고 하면서,『프랑스는 동양의 조그만 나라의 기업이 톰슨 멀티미디어를 인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손상하게 하였다. 만일 미국 기업에서 톰슨 멀티미디어를 인수하려 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한국의 해당 기업은 톰슨 멀티미디어를 위한 구출자로까지 부각되었다』(12월 6일)라고 보도하였다.
이 전에는 국내에서의 과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었지만, 해가 갈수록 세계화로 인하여 이제는 순식간에 세계에 알려지고, 오히려 한국 국내의 어떤 실책과 사건에 대한 기사는 특종 기사로 세계 각지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크게 보도된다.
만일 금세기 초 개화기의 안중근(도마) 의사와 도산 안창호라면, 세계화의 이 시기에 우리에게 뭐라고 말할까? 세계화, 국제화에 앞서 자기 정화, 자기 쇄신부터 선행되고, 치밀한 거시적 정책 아래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진실과 근면은 인간 사이에서 신뢰를 낳게 하는 인간 만사의 기본적 토양이 되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교회가 아무런 기술과 자본이 없다하지만, 바로 이 진실과 근면의 복음적 가치로 기술과 자본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인간 사회를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구세주의 선교」에서도 이러한 복음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교회는 항상 그가 복음화한 백성들 사이에 발전을 향한 충격을 주었으며, 오늘의 선교사들은 정부와 국제 전문가들에 의하여 그 전보다 더 발전의 추진자로 인정되고 있으며, 정부나 전문가들은 보잘 것 없는 방법으로 훌륭한 성과를 올린 것을 감탄하고 있다.… 교회는 저개발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기술적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와 교회와 인간에 관한 진리를 선포하고 그 진리를 구체적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발전문제를 해결하는 데 첫째 가는 도움을 준다.… 교회의 사명은 경제나 기술이나 정치 분야에 직접 작용하거나 물질로써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깨우쳐서「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더욱 인간답게 되는 것」을 백성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58항).
적당주의, 안일주의를 다시 한 번 퇴치하고, 올바르고 성실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고히 정립하여, 나라 안팎 어디서나 책 잡힐 실정은 말아야겠다.
진실과 근면을 바탕으로 세계화로 인한 예측 밖의 사태에 대처해 가는 내적인 힘을 더욱 길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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