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서울 역삼동본당에서는 의사 안중근 명근 형제의 세례 1백 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의사 안중근, 그는 누구인가. 어둡고 암울한 일제하에서 두 손과 발이 묶인 채 신음하던 우리 민족의 자주적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하느님 대전에 봉헌했던 사람 바로 그 의인이 아니었던가.
돌이켜보면 그의 세례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한 독립운동가로 또는 의식 있는 개혁가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던 안중근의 활동은 세례와 더불어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운동으로 그 폭과 깊이가 달라질 수 있었다. 11일 기념미사에 앞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강조된 사실도 다름아닌「신앙인 안중근」이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노길명 교수는 안중근 의사와 안명근의 왕성한 활동의 에너지는 바로 그리스도 신앙이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신앙운동과 민족운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신앙 표현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 교수는 또 그들은 철저한 교리 학습과 충실한 교회활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 그리고 인류의 평화라는 그리스도적 가치를 체내화시킬 수 있었으며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루도록 불림 받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역설하고 있다.
결국 안중근 명근 형제는 그들이 배운 신앙을 지식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가일층 승화시켜 나갔다는 얘기다. 이 부분은 같은 날 미사를 주례한 김 추기경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앙과 생활의 일치였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니라 그 둘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평신도로써 나아가 시대의 순교자로 승화되었다는 것이다.
불안과 혼돈을 거듭하는 오늘의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안중근 명근 형제의 산뜻한 신앙 얘기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시사해 주고 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절박한 시점에서도 하느님의 정의를 주저없이 선택한 그들의 용기와 신앙심은 개인적 편리와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우리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묵시적 교훈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김수환 추기경도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선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과 기업인 등 지도 층이 먼저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고 고통을 나누는 모습을 솔선해 보여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아울러 김 추기경은 안중근 명근 형제의 실천적 신앙이야말로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참 신앙인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최근의 사태와 관련 우리 신자들의 소극적 자세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 먼저 풀어 나가는 것이 삶의 규율이자 원칙이다. 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번 노동법 안기부법 개정 건으로 발생한 사태는 따라서 원인 제공자 선에서부터 실마리를 찾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더불어 여론을 형성하고 국정을 책임지는 각계 평신도 지도자들이 앞장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