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예식 중「평화의 인사」에 대해, 새 미사 통상문의 루브리카 부분(예절 때 취해야 할 일련의 행동 규정을 붉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에서는『교우들이 서로 묵례나 합장, 악수 등으로 알맞게 인사를 나누며 말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묵례는 「말없이 고개만 숙이어 표하는 예이며 합장은「두 손바닥을 마주 합침」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두 인사법은 모두 우리나라의 전통예절과 신자들의 종교 심성에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묵례는 고개만 숙이는 인사법으로, 우리나라의 전통 예절에서는 웃어른의 아랫사람의 인사에 답례할 때 사용하는 하대법이기에 친교와 평화의 인사로는 합당치 못할 뿐만 아니라, 묵례는 말없이 하는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말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모순되는 것이다.
합장의 경우 이제껏 불교계에서 부처에게 혹은 불도 상호간의 인사로 통용되어 온 바, 종교의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토착화의 정신을 살린다는 이유로 신자들의 종교 심성을 전혀 고려치 않고 강요하다시피 제시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친숙하지 못한 만큼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악수는 친교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기에 매우 적절한 인사법인데, 이번 기회에 잘못된 관행을 신자들만이라도 고쳤으면 좋겠다. 악수는 결코 두 손으로 하거나 한 손으로 받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웃어른에게 예를 갖추자고 한다면 상체를 조금 숙이면 되는 것이다. 다만 웃어른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뜻을 담아 두 손으로 할 수는 있겠다. 그러기에 공무원들이 대통령과 악수할 때애도 결코 두 손으로 하는 법이 없음을 우리는 TV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평화의 인사」의 루브리카 부분을『교우들은 서로 큰 경례나 평경례, 악수 등으로 알맞게 인사를 나누며 말한다』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전통 예절상, 큰 경례와 평경례는 절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웃어른에게나 상대방을 존경하는 뜻을 담아 각각 45도와 30도 정도 굽히는 인사법으로 친교와 평화의 인사로 적절할 뿐만 아니라, 토착화의 정신도 얼마간 살릴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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