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여
해질녘 남산의 이끼 푸른 바위 위에서
락조로 물든 허공들 지나
북녘 하늘을 날으는 철새로
바라보며 그대를 생각 하노라
고향이래야 해묵은 싸리담장
목놓아 흐느끼던 내 어머니 말씀뿐
오 두고 온 내 고향 시골촌은
오랜 굴욕과 힘겨운 삶에
답답하고 쓸쓸하고 흩어진 풍경
이제는 어느 추억의 갈피 속에
묻어버렸느냐
첫 아기 받아들고 초물처럼 녹아내리는
안해의 눈물
고향이란 정녕
이렇게도 처량하고 괴로운 것이냐
고향이여 죄 많은 이 자식을
불효막심한 그대의 아들을
나는 결코 병환 속에
그 꺼져가는 생명에 작디 작은
한 점의 희망마저 못 안겨준 불효 자식
용서하시라 고향이여
그대를 뒤에 두고 떠나온 한 많은 이 몸
나는 정녕 행복이 약속된 무릉도원
이래서도 아니요
칼을 든 도적 앞에 집을 못 지킨 아이
깨여진 놀이감 하나라도
제 것이라 움켜지는
그 한없이 억울하고 처량한 심정을
고향아 알아다오 믿어다오
일어나라 고향이여
흙을 깨물며 짜거운 바다물을 들이키며
이것은 역시 조상의 땅
목놓아 목놓아 외쳐도
온 민중이 하나가 되어
돌맹이 하나라도 제 힘으로 움켜쥐고
식칼 하나라도 제 힘으로 들고
온 민중이 폭풍쳐 일어날 때
어둠 속에 새 날이 밝아오리
자유민주의 새 날 통일의 새 날과
헤여졌던 일천만 이산가족과
서로서로 상봉의 순간
갈라졌던 삼천리 금수강산 내 조국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순간
그늘졌던 그대들의 얼굴 바다에
자유의 빛이 안겨오리
끝없이 끝없이
이 시는 96년 1월에 귀순해 현재 대우자동차에 근무하고 있는 배인수(28세)씨가 북한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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