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우 뜻깊은 날이다. 왜냐하면 나의 사랑하는 후배들이 사제로 태어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모든 후배들이 다 사랑스럽지만 오늘 사제품을 받은 후배 중 병철이가 끼어 있어 더욱 의미 있는 날이었다.
수 년 전 분신처럼 친했던 친구(신학생)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그동안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곰같이 큰 키에 조금은 모자란(?)듯 순진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병철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내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오늘 그놈이 사제로 태어나는 것을 보는 순간 천주께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언젠가 술이 조금(?) 취해서 시골 본당까지 홀로 찾아온 병철이가『신부님, 아니 형! 내 첫 미사 는 연미사예요』하고 소같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린 그때 그 사건이 다시 뇌리에 스치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던 그날 밤 병철이와 옛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밤을 하얗게 지샜다. 끼가 철철 넘쳤던 죽은 재훈이와 가족들 그리고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또 하나의 후배를 술안주로 삼아가며.
『그래, 병철아! 이제는 두 몫으로 살아야 된다. 아니 세 몫으로 살아 정말 탁덕의 마음을 간직한 훌륭한 사제가 되어야 한다. 첫 미사가 연미사라던 네 말대로 항상 낮은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길 기도하마』
첫 미사가 연미사라면 사제로서는 참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죽음을 가까이에서 살아야 되는 사제생활, 이 세상 무엇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되는 거룩한 사제생활이기에 어쩌면 사제품은 죽음을 선언하고, 공인 받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래, 병철아! 그렇게 소망했던 사제품을 받았으니 이제 그리스도의 향내 나는 사제로서 친구의 몫까지 훌륭히 살아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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