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가 나라 전체를 개망신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돈과 권력 앞에 무참히 쓰러지고 짓밟힌 인간의 양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을 수천만 원 또는 수억 원씩 50여 명에게 나눠 줬다고 하는데 정작 받은 사실을 시인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나머지는 이름이 보도되자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거나 정치적인 음해 운운하면서 부인하고 있다.
현재 한보의 대출 과정에 관련된 재계, 정계, 관계의 혐의자들 색출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 마디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개정된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수용 여부를 두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있는 와중에 한보 부도라는 메가톤급 사건이 터졌다. 혹자들은 이 사건이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새 정치판을 짜기 위한 고의적인 술수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노동법 회오리를 잠재우기 위한 무마용 희생타라고도 한다. 한보의 총수라는 사람이 다른 기업들은 50조 원씩을 빌려 써도 아무런 탈이 없는데 자기는 기껏 5조 원 빌린 것 가지고 왜 야단이냐고 항의하는 것을 보면 석연찮은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개 대기업들이 자기 자본의 불과 20∼30% 내외에 은행 빚을 끌어와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 은행 돈 빌려 쓰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운명이 은행 돈 빌리고 못 빌리고에 달려 있으니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단골로 동원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한다는 사람들과 고위 공직자들 그리고 은행장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부유하게 살고 있는 이면에는 숨겨진 부정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번 한보사태에는 여야의 실세들이 대거 관련된 것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과연 그 끝이 어디인지 아직도 불투명하다. 문제는 검찰이 성역없이, 누구의 압력이나 간섭없이 독자적이고 이성적으로 법 집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가 한 점의 의혹없이 사실대로 국민 앞에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정치적 흥정도 또 돈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여하한 변명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 악은 악으로, 불의는 불의대로 척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또 다른 악과 불의를 창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선 안 된다. 돈과 권력 앞에 무참히 짓밟힌 인간 양심을 되찾는 일이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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