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의 최창무 주교와 아홉 분의 사제들이 사후에 장기를 모두 기증하고 또 시신을 화장해 한 줌의 재로 뿌려줄 것을 결의한 사실은 교회 내외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결의를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께 보고하고 승낙까지 받았다고 한다.
우리 교회의 주교를 포함한 성직자들이 장기를 기증하고 시신을 화장해 묘비 하나 없이 유골을 뿌려 없애도록 한 결의는 여러 면에서 획기적이고 모범적이며 시사적인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이런 결단을 내린 성직자들의 그 숭고한 뜻과 고결한 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 마디로 그들의 결단은 사제직에의 충실과 완성의 예표로 볼 수 있다. 즉 죽어서 모든 장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자신은 한 줌의 재로 뿌려지겠다는 결의는 바로 사제의 삶을 전적으로 희생과 봉사의 제물로 봉헌하려는 자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후 남에게 나누어줄 장기들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사용하고 관리를 잘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적으로 모든 면에서 사제직에 최대한 충실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묘나 묘비조차 전혀 없이 이름자만 남기고 이 세상에서 흔적을 모두 없애는 것은 사제로서의 완전한 봉헌, 곧 사제직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이 같은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전 국토의 묘지화를 앞장서 해소하고 또다른 하나는 화장에 대한 우리 신자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매년 여의도 면적 만한 20만 기의 묘지가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 묘지 면적이 주거지역의 절반을 차지하고 공업지역의 3배를 넘을 만큼 국토의 묘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일체의 호화분묘를 불허하고 1기당 면적을 3평 이하로 제한한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또다른 하나는 우리 신자들이 지금까지 화장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이나 편견 등을 불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과거 한때 우리 교회 내에서는 화장이 금기시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화장이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또 교회법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공표함으로써 이제는 화장이 기피되고 금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될 만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성직자들의 결단이 그들만의 행동으로 끝나서는 별로 의미가 크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결단이 참으로 사제적이고 교회적이며 또 현세 질서의 복음화 차원에서 가치 있고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동참하는 일일 것이다.
이 운동이 우리 교회 내에서부터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사회사목부의 조속한 후속 조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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