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발표된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크게 두 줄거리로 그 내용을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줄거리는 다름 아닌 임기 1년 남긴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 한보사건에 대한 언급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대통령은 측근의 사람들이 한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차남 현철씨의 연루 부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책임적 차원에서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줄거리는 바로 남은 임기 1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과제 제시다. 김 대통령은 부정부패 척결, 경제 살리기, 안보태세 강화, 그리고 엄정하고 공정한 차기 대통령 선거 등 4가지 과제 해결을 임기 1년의 대통령에 새로 취임하는 자세로 노력하고 진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집권당 핵심이자 대통령의 측근들이 엄청난 부정부패의 고리에 연결돼 있고 나아가 아들마저 끊임없이 한보와의 연루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의 담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한보사건과 맞물려 우리의 상황은 콕 꼬집어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여지조차 없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엄청난 시련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보면 그 위기의 중심에 앉아 있는 대통령의 담화 내용은 핵심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현철씨 부분에 있어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보사건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에서 드러난 축소 은폐에 대한 의문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책임 언급은 너무나 피상적이라는 인상이 짙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일각에서는 특별 검사제를 도입, 한보라는 의혹 덩어리를 깡그리 파헤칠 것을 요청하고 있고 그 같은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국민들의 정서와 부합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4년 전 취임과 더불어 김영삼 대통령은「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그 4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부정부패 사건의 연속 상연을 지켜보아야 했지만 개혁과 변화라는 기치를 내건 현 정권의 사정 칼날이 제대로 춤추는 것을 보지 못해 왔다.
지금 한보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한보사건은 바로 연속으로 불거진 역대 부정부패 사건들을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한 현 정권의 구태가 낳은 사생아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위기 상황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위기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지 우리 국민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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