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조회가 있던 지난 화요일, 우리 학교 교직원들은 흐뭇한 좋은 소식을 하나 접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동북부에서 있었던 유래를 찾기 힘든 강진과 쓰나미로 큰 어려움을 겪는 일본을 돕기 위해 학생회가 지난 몇 주 동안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꽤 큰 액수가 모금된 것이었습니다. 모금된 돈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어떤 학생은 외부에서 수상하여 부상으로 받은 상금 50만원도 성금으로 보탰다고 합니다. 학생회 학생들은 학교 전체에 거의 도배를 하다시피 벽이며 계단에,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일본에 관한 화보를 붙여 놓고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였고, ‘함께 기도해요’라는 코너를 마련해 학생들이 오다가다 “힘내요, 일본!” “유키, 에리코, 코모코…. 살아 있는 거지? 제발 무사하기를! 희망을 가지세요. 언젠가는 해가 뜹니다.”…. 등등의 화살기도를 써서 붙여 놓게 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일본 대지진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큰 성금을 쾌척하였고, 일반 시민들도 성금을 많이 내었습니다. 유례없이 빠른 시간 안에 큰 금액이 모여졌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대재앙’에 대해 일본대사관 앞에서 가졌던 수요시위 대신 애도의 수요일을 가지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에 의해 누구보다도 고초를 많이 겪으신 할머니들인데도, “일본 대지진 참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빠른 구조와 복구를 바란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하셨답니다. 모금도 시작을 하시겠다는 제의에 정대협 관계자는 “과거의 아픈 경험으로 누구보다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잘 이해하는 할머니들의 제안인 만큼 모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할머니들의 소중한 취지에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그와 같은 재난을 당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느님은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가?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런 무서운 재해를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든지, 우리를 일깨우기 위한 경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목회자께서는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사회 지도자이시기 때문에 그런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질타를 받았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만나게 됩니다.
같은 질문을 저에게 던지면 저는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믿습니다. 하느님이 일부러 이런 큰 고통을 주신 것은 아니라고요, 하지만 하느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 안에 계시고, 또 그 고통을 자기 것으로 아파하는 사람들 안에 함께 계시고요. 우리가 주위에서 겪게 되는 큰 고통은 많은 문제와 인간의 악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성장시키고, 인간의 위대함과 선함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뜨겁게 호응을 보인 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고통 받는 일본인들이,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며, 일본이 이웃이라는 마음이 발동해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가 1993년부터 하고 있는 한일 교류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일본에 있는 네 군데 성심 자매학교에서 스무 명 정도가 한국을 방문하여 교류회도 갖고 홈스테이를 갖고, 겨울 방학에는 다시 한국 학생 스무 명 정도가 일본을 방문하게 됩니다. 방문 기간 뿐 아니라 편지 교환을 통해 일 년 내내 일본에 있는 친구들을 자신의 삶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해, 교류회를 마치고 서로 헤어지는 자리에서 한 대표 학생은 이런 연설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교류회를 통해 일본이 이제 지도 위의 한 나라가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지닌 나라, 특히나 제가 많이 사랑하게 된 정다운 친구와 그 가족의 얼굴이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학생의 말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점점 넓어져서 지도 위에 남으로 존재했던 많은 나라들이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지닌 이웃으로 다가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