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과학과 기술 문명이 오늘날처럼 인간의 우상이 된 적은 없다. 자연과 산물의 조작과 변용에 성공하고 있는 인간은 이제 그 자신의 조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인간은 자신과 자연을 조작함으로써 역동적인 자아형성과 발전,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창조주가 인간을 삶에로 부르신 일에 대한 적극적 응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비윤리적, 비인간적 과학의 시도들을 볼 때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과학을 통하여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아파괴를 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 인간에 시도하는 조작의 윤리성은 기본적으로 과학자 자신들의 인간관과 세계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그 과학자들은 오늘의 인류와 무관하게 어디에서 떨어지거나 솟아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우리 중 일부요 과학의 장에서 우리들을 대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학의 행위도 인간의 행위인 이상 그것은 윤리적 행위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과학자들은 과학이 할 수 있는 그 윤리성과는 상관없이 무엇이든 다 시도할 수 있고 또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수차에 걸쳐 과학과 기술의 내적 규범은 오직 과학 그 자체의 발전에만 있는 듯 여기는 태도를 경계하였다. 오늘의 인류가 그가 지닌 과학적 능력과 기술로써 가능한 것은 그 윤리성을 따지지 않고 무엇이든 모두 시도되어야 한다는 과학기술 만능주의를 경고한 것이다.

수 년 전 교황은 회칙「진리의 광채」를 통하여 오늘의 인류가 인간 행위의 목적지상주의, 지향주의, 결과주의 및 균형론에 빠지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다.

자신이 설정한 목적이 좋으면 수단의 비윤리성을 문제 삼지 않는 태도, 행위의 주관적 지향만 순수하면 그 외의 객관적 행위 요소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 예견할 수 있는 결과가 선하면 그 행위 자체는 윤리적으로 선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태도, 보다 큰 선의 실현을 위해서 보다 작은 악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행할 수 있다는 태도 등을 경고하신 것이다.

이미 올챙이, 쥐 등의 복제에 성공한 과학자들은 최근 양과 원숭이 등 성장한 포유동물의 유전자 조작을 통한 복제도 실현시키고 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같은 방법으로 인간복제도 가능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4년 전 미국에서는 인간 배아를 분할해서 인위적으로 똑같은 일란성 쌍생아 넷을 만들고 6일 만에 폐기처분한 적이 있다. 그때 역시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신성한 인간 형성 과정에 개입한 것을 두고 온 인류가 그 윤리성을 크게 문제 삼았었다.

어떤 방법이든 인간복제 실험을 시도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지성적 행위는 영적인 가치에 역행할 수 없음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인간의 영성과 존엄성을 그 가장 시초에서부터 파괴하려 드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러한 종류의 실험 결과를 통하여 많은 불임 부부들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쁨을 가지기도 하고 영생을 희구하는 인간의 갈망을 일부나마 충족시킬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가공할 목적지상주의, 지향주의, 결과주의가 아닐 수 없다. 좋은 목적이라도 그 수단이 비윤리적일 때 그 행위는 할 수 없음을 교회는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다.

어떤 행위가 참으로 윤리적 행위가 되려면 그 행위의 목적, 지향, 결과 이전에 우선적으로 그 행위 자체의 본질이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이어야 한다. 그 행위 자체가 악할 때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과가 선이라 해도 그 행위는 선이라 할 수 없다. 하물며 그 결과가 행위자가 지향한 소위 선한 목표보다 수많은 다른 악한 결과들을 이끌어낼 때 그것은 더욱 금지된다.

실험용으로 쓰일 많은 수정란을 얻기 위한 과정의 비윤리성뿐 아니라 수정란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면서 죽게 되는 배아, 폐기되는 배아, 자궁 내에 착상되지 못하고 죽는 배아, 너무 많이 착상되어 인위적으로 죽어나갈 태아(태아 감소법) 등을 따져볼 때 배아를 분할하는 인간복제 실험은 곧 조기살인 실험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유전자 복제를 통한 인간복제도 마찬가지의 죄악이다. 장기 생산을 위한 인간 만들기, 똑같은 인간들의 범죄 행위 등 현상적 죄악들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로 인해 확산될 인류 전체의 인간관의 타락이다. 부모의 자녀 출산과 교육은 바로 하느님 창조사업의 계속이요 따라서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삶에로의 부르심에 응답한 신적 손길의 구원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실험실에서 제조되어 삶이 부여된 인간은 그 삶의 마감 역시 인간의 자의에 맡겨질 수 있다고 여기는 가공할 인간관의 타락을 가져오는 것이다. 인간을 보는 눈이 타락하면 그 자신과 타인의 삶의 타락을 가져오고 따라서 인간을 인간으로 지탱하는 윤리 도덕은 사라져 인간세계는 수많은 범죄가 판치는 동물적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생명의 시작, 보존, 종말과 관련된 인권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외의 모든 인권은 논할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