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 곧 신앙에 입각해서 행동한다는 말과 같다. 신앙은 양심을 비춰주고 또 선한 양심은 신앙을 보호한다. 양심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취하는 인격적 행위의 윤리성을 판가름해주는 기준이 된다. 우리가 양심에서 울어난 판단을 높이 평가하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77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바 있는 국제 엠네스티가 지난해에 소위 양심법 보호 캠페인을 편 것도 양심범에게는 흔히 그 나름대로의 주관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양심을 어기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배신행위이다. 이것이 객관적인 행위의 규범가지 침해할 때 그는 자신과 사회에 대해 2중의 배신을 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양심에 벗어난 비뚤어진 행위에 대한 비판은 거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주위에는 양심 따위는 깔아뭉개고 적당히 不正直하게 사는 것이 바로 현명한 처세의 한 방편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우직하게 양심대로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낙제생들이나 취할 어리석은 길리라고 이들은 서슴없이 말한다.「적당히」남을 속일 줄도 알고「적당한」방법으로 돈도 모으고「적당히」교제해서 지위도 올라갈 줄 아는 사람-이런 사람이 곧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치와 허영에 빠져 수십억이나 되는 남의 돈을 겁 없이 주무르다 남편의 신세까지 망쳐놓고만 것도 바로 교묘한 不正直이 가장 현명한 처세술이 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다. 또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근로자들의 생활이야 어찌되건 그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뤄진 돈방석위에서 온갖 방탕을 일삼는 일부 몰지각한 기업주의 탈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영달이 거추장스런 양심 따위 보다는 우선한다는 한심한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신년메시지에서 지적했듯이 양심이 병들고 부패했을 때 폭력은 싹트기 마련이다. 이 폭력은 또한 적개심을 일으키는 증오의 원인이 된다고 교황은 경고하고 있다. 새해 새아침, 모두가 양심을 찾아 내가 너를 믿을 수 있고 너 또한 나를 믿을 수 있는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가 이뤄지길 빌어본다. 참으로 양심회복이 아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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