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님의 글의 표현대로 내가 사는 운산이라는 곳은 구름 속에 싸이지는 않았지만 이름 그대로 산골이다. 성당도 조그만하고 우리 형제들도 그리 많지 않은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다. 메마른 산골생활에 젖어 생활의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인지 제때에 꽃 한송이 못 바치고 미사를 드릴 때가 많다. 송구스러운 마음은 간절하지만 집에 없는 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도시에서와 같이 꽃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올봄 일찍 꽃씨를 많이 심었다. 과꽃 코스모스 금잔화…. 어서 지루한 여름이 지나고 예쁜 꽃들을 키워주기를 바라며 열심히 물 주어 가꾸었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노랗고 화사한 오랜지 빛의 금잔화, 분홍보라의 환한 과꽃, 하얗고 짙고 얕은 분홍의 코스모스….
주일아침 기쁜 마음으로 한 아름 꺽었다.
보고 계시던 아빠가 『왜 그냥 두고 보지 꺽느냐』고 하신다. 성당에 가져간다고 했더니『당신은 맨날 성당밖에 모르는군』하신다.
몇 주일째 제단에 꽃을 바쳤다. 돈으로 산 고급 꽃은 아니지만 여름 내 정성이 담긴 꽃을 제대 옆에 바치고 미사를 드릴 때 마음이 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버릴 꽃발을 생각하니 또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예산엘 가다가 무심히 내다본 차창 밖 어느 꽃 집 앞에 소담스레 피어진 노란 국화분을 보았을 때 꼭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제때 옆에 국화분을 놓은 것을 상상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값은 얼마나 할까. 또 비싸면 어떻거나…
우선 전화로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하나에 ○○○원이라나.
『주님 감사합니다』주머니와 한참 의논을 하던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람도 만원이고 내 짐 보따리로 많아 오늘은 우선 하나만 사기로 했다.
예쁜 것으로 골라 꽃이 상하지 않게 잘 싸달래서 꼭 안고 왔다. 주일날 예쁜 국화꽃을 바라보며 미사드릴 것을 생각하니 하찮은 것이지만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옴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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