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한사람의 마음을 상심에서 건질 수 있다면 내 사는 것 헛되지 않으리. 만일 내가한사람의 생명의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면 또는 그 고통을 시원하게 할 수 있다면 내 사는 것 결코 헛되지 않으리』
누군가가한 이 말을 언제부터인지 저는 입버릇처럼 되 뇌이고 또한 저의 생활철학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위사람들은 저를 보고 불쌍한 여자, 가엾은 여자라고들 말하지만 저는 결코 제가 불쌍하다거나 슬픔을 짓씹으며 한숨과 눈물로 살아가는 여자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저의 조그만 힘이나마 한사람의 마음을 상심에서 건질 수 있고 한생명의 괴로움과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제가 사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어떤 여자보다도 행복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을 뿐입니다.
행과 불행의 가치와 평가기준을 내적인 것에 두느냐 의적인 것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만족을 느낄 줄 알기보다는 남이 부러워하고 칭찬해주는 그런 행복을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물질적부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말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행복한가는 그들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항상 아주 가까운 자기주위에 있는 것이며 자기 마음 속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생의 길 또한 자연의 원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험산준령을 넘으면 평지가 나오고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궂은날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상쾌한 맑고 청명한 날이 있으며 금방산더미도 집어삼킬 듯 공포와 전율 외 거친 파도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가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인간에게 영원한 행복도 주시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강인한 인내와 성실로서 가난하고 불행한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나이 올해 설흔세살.
이제 겨우 인생의 반을 조금 더 살은 나이지만 한 백년은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너무도 많은 시련과 고뇌와 슬픔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군복무중 불외의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어 기지도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일일이 손으로 받아내야 하는 불구의 남편을 모시고 이 거친 세파를 헤치며 살아가기란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는 너무도 가혹한 고통이었습니다.
병고에는 으레 가난이 따르기 마련인가 봅니다. 이 가난은 우리인간의 적이요 원수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받아야하는 멸시와 모욕, 가난하기 때문에 받아야하는 슬픔과 고통, 또 절망과 불행….
그야말로 가난은 인간의 눈물의 원천이요 불행의 씨앗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지 않기 위해 피와 땀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이 모든 것들이 제 곁을 떠나가 버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지긋지긋했던 가난한 날들.
수많은 밤을 공포와 불안과 초조 속에 뜬 눈으로 지새우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며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어야했던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렇다고 저에게는 남들처럼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벌어 놓은 것도 없으며 늙어서 노후를 편안히 의지하며 지낼 자식도 없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가난해지지 않으려는 또한 인간답게 살려는 피눈물 나는 의지와 노력, 그리고 불구의 남편만이 있을 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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