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때부터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읍니다.
불구의 몸으로 사회의 응달에 버려진 채 누구한사람 거들떠보지도 않고 외롭게 가난과 병고 속에 몸부림치는 그분의 처절한 삶에 나의 편지는 하나의 커다란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그분의 회답을 받을 때마다 저는 어떤 가슴 뿌듯한 보람 같은 것을 느껴보기도 하였읍니다.
서로의 편지가 오가던 몇 달 후 그해 8월 어느 날 어머니한테는 언니네 집에 간다고 슬쩍이 말씀드려놓고 그토록 제 마음 한구석을 꽉 차지하고 있던 그분을 찾아 금산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읍니다.
어머님한테는 죄송스러운 일이었으나 저는 그분의 생활 그분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제가 살고 있는 연무읍에서 금산까지의 거리는 삼백여리길, 버스로 꼬박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쨍쨍 내리쬐는 8월의 뙤약볕을 머리에 일고 대전에서 사들은 복숭아 꾸러미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그이를 만난다는 설레임과 기쁨 그리고 그 어떤 호기심으로 논둑 밭둑길을 따라 더위와 고달픔도 잊고 단숨에 그분 댁에 들어서 버렸읍니다.
그분은 그때 금산읍에서 자그만 고개를 하나 넘어 조금 떨어진 금성면 양전리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큰 동네와는 동떨어져있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외딴 산골짝이었습니다. 집 뒤에는 10년생쯤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빽빽이 둘러처져 있고 주위에는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멋대로 피어있는 그야말로 한적하고 조용하기 만한 골짝 양지반은차가, 벽도 반절은 흙벽돌로 때워지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다 찌그러져 가는 오두막집이었읍니다.
저는 부끄러움도 잊고 다짜고짜 그이의 방 앞에 오뚝 서버렸읍니다.
뒷문 쪽에 누워계시던 그이는 불시에 나타난 불청객을 보고 몸을 반쯤 일으킨 상태에서 의아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읍니다.
『안녕하세요. 저 논산에서…』하고 말하자 그제서야 저를 알아보신 그이는 놀란 토끼모양 어리둥절하던 표정을 지우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반갑게 맞아 주셨읍니다.
방안에 들어서니 매캐한 흙 내음이 코끝을 자극해 왔읍니다.
헌 신문지로 누덕누덕 발라붙인 벽 그리고 회푸대종이로 바른 방바닥은 낡아서 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에서는 먼지와 흙이 꾸역꾸역 삐져나오고 있었읍니다.
더운 여름이어서 하얀 메리야쓰만 입고 누워계시는 그이의 첫인상은 퍽 깨끗해 보였읍니다.
넓은 이마에 잘생긴 얼굴 누가보아도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읍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뜨거운 여름날 방안에서만 누워서 살아가야하는 답답하고 괴로운 가혹한운명의 그분이었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무던히도 참아 이기어야하는 죽음보다 더 괴로운 그이의 생활이었지만 실의에 차있거나 절망의 빛을 그분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오히려 괴로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 듯싶은 그이의 얼굴이었읍니다.
촉촉히 내린 밤이슬을 머금은 나뭇잎 새들이 은빛 퍼레이드를 펼치던 유난히도 달이 밝던 그날 밤 풀벌레의 노래 소리를 벗하며 밤이 깊도록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읍니다.
주로 당신의 지나온 지난날들을 돌려주었습니다.
배고픈 설움도 많이 받았고 학비를 벌기위하여 공장 배달원 노릇도 하고 방학 때면 노동도 하고 장사도하고 가정교사도 해가며 고학생만이 겪어야하는 갖가지 말로 다 할 수없는 많은 고생을 했다는 그이의 이야기는 듣고 있는 저의 콧등을 시큰하게 해주었읍니다.
저는 그이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그 이튿날 그분께 보내드릴 책 한권을 논산 책방에서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제가 언니네 집에 갔다 오는 것으로 믿고 계시는 어머니가 그쪽 안부를 물어올 때 마음이 조금 언짢았지만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았읍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계속 편지를 주고 방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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